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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윤석열~탄핵!” 송년회 풍경도 달라졌다[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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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2·3 비상계엄 사태가 연말 풍경을 바꿔놨다. 시민들은 송년회 대신 집회 현장에 가거나 “윤석열~탄핵!” 등 시국을 풍자한 건배사를 외치며 연말을 보내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촬영 도움 : 이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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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야?” “됐어? 된 거야?”

지난 14일, 최지영씨(34)의 송년회는 조금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오후 4시쯤 지영씨 집으로 모여든 친구들은 다 같이 식탁을 차리면서도 계속 텔레비전을 힐끔거렸다. 화면에는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2차 탄핵소추안 표결 과정이 나오고 있었다. 긴장을 놓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오후 5시쯤, ‘찬성 204표’로 탄핵안 가결 소식이 들려왔다. 친구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탄성을 내뱉었다.

“와! 됐다 됐어!” “야 이제 한잔해!” 탄핵 생중계를 ‘단체 관람’하던 이들은 뒤늦게 둘러앉아 근황을 전했다. 전날 생일은 맞았던 친구는 그제야 제대로 축하를 받았다. 만나면 늘 하던 각종 게임 이야기도 슬슬 시작됐다. 뉴스 화면에는 국회의장의 당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시길 바랍니다….”

■“윤석열~탄핵!” 송년회에서도 울렸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2024년 송년회 풍경도 바꿔놨다. 소중한 사람들과 기쁘거나 슬펐던 일을 이야기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려던 이들은 함께 집회 현장으로 달려가거나 옹기종기 모여 뉴스만 내내 바라봤다. 취소될 뻔한 연말 모임을 다시 잡았더라도 막상 대화 주제는 온통 정치 이슈로 뒤덮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회사 송년회 때 <퍼스트레이디>(김건희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관람한대” “회사 대표가 윤석열 뽑았는데 송년회 때 취해서 소리 지름 ㅋㅋ” 등 웃지 못할 연말 풍경이 공유됐다. 탄핵 관련 건배사를 올리는 글도 적지 않다. 지영씨네 송년회 건배사는 “가결~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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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가 연말 풍경을 바꿔놨다. 시민들은 송년회 대신 집회 현장에 가거나 “윤석열~탄핵!” 등 시국을 풍자한 건배사를 외치며 연말을 보내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촬영 도움 : 이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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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게임 길드(guild·사용자 모임)’로 만났다는 이들은 3~4년 전부터 연말을 함께 보내고 있다. 지영씨는 “계엄 선포 이후 ‘내란성 두통’ ‘내란성 불면증’이라며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송년회를 두고 고민이 많았는데 수원·용인·청주 등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일정을 맞춰둔 거라 날짜를 바꾸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여럿이 있을 때 정치 얘기는 최대한 피했거든요. 서로 정치 성향이 다르기도 하고요. 선거 때 윤 대통령을 뽑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어요. 정치 얘기를 한 번도 나눠 본 적 없는 이들끼리 며칠 내내 정치 얘기만 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거죠.”

비슷한 시각, 여의도에서 ‘송년회 아닌 송년회’를 보낸 이도 있다. 직장인 황병철씨(28)는 대학 친구들과 송년 여행을 계획했다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일정을 바꾸었다. 병철씨는 “(지난 7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한 차례 부결되는 걸 보고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말 여행 장소는 졸지에 강원도 별장에서 여의도 한복판이 돼버렸다. 병철씨는 “응원봉이 없어서 애인이 가져온 무드등을 거꾸로 들고 다녔다”며 웃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게 아쉽진 않다고 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려던 목적이 훼손된 건 아니잖아요. 집회에 나온 사람들과 한마음이 된 것도 좋았어요. 축제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저는 내향형 인간이라 집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람 많은 곳 가는 걸 처음엔 걱정했죠.” 병철씨와 친구들은 집회가 마무리된 뒤 인근 식당에 들러 못다 한 송년회 겸 ‘탄핵 파티’를 즐겼다. 건배사는 “윤석열~탄핵!”이었다.

■‘사회적인 것’이 된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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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메리퇴진 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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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정우민씨(30)는 지난 6일 금남로 탄핵 집회에서 자유 발언에 나섰다. 체육관 회원들과 관장님도 그가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나왔다. 우민씨가 하고 싶은 말은 ‘힘의 진정한 가치’였다. “무력과 무예는 건달들이 쓰는 폭력과는 달라요. 공동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지키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거든요. 우리 체육관에서 늘 강조하는 건데, 이번 비상계엄은 그냥 사리사욕 채우기 위한 폭력이었다고 봐요.” 우민씨와 회원들은 뜻을 모아 체육관 명의(대한무에타이협회 광주전남지부)로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성명서도 발표했다.

체육관 송년회는 자연스레 ‘성명서 리뷰’ 자리가 됐다. 회원들끼리 성명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우민씨가 발언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돌려봤다. “다들 들끓는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것 같아요. 이번 기회로 ‘무에타이(태국의 격투 기술)’를 하는 자세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어요. ‘힘’을 다룬다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요.”

지역 동료 변호사 150명가량이 모인 송년회도 이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우민씨는 “원래였다면 음주·가무와 장기자랑으로 시간을 보냈겠지만 이번엔 릴레이 발언이 이뤄졌다”면서 “10명 정도가 자기의 소신을 밝혔는데 다들 ‘법조인으로서 이렇게 자괴감이 든 적이 없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는 주영은씨(28)도 “사회적인 이야기로 채워진 송년회를 보냈다”고 말했다. “원래 송년회 때 한 해 가장 화났거나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잖아요. (비상계엄이 아니었다면) 올해도 ‘개인 차원’에 머물렀을 것 같아요. 이번엔 매주 시위에 나간 친구들도 있다 보니까 시국 이야기나 사회문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됐어요.”

영은씨는 친구들과 송년회에서 ‘2024년 문답’을 만들었다. 각자 메모장에 한 해 겪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을 적은 뒤 내용을 공유했다. 올해 가장 좋았던 경험과 안 좋았던 경험, 내년에도 유지하고 싶은 일상, 멈추고 싶은 일, 올해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등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떠오르는 답을 적는 식이었다.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탄핵 집회’라고 써넣었다.

그는 얼마 전 유튜브에 ‘탄핵 파티’ 브이로그도 올렸다. 친구 3명과 노래방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로제의 ‘아파트’ 등 이른바 ‘탄핵 메들리’를 열창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잔뜩 흥이 올라 “윤석열 탄핵! 탄핵! 탄핵!”을 외치는 장면도 고스란히 찍혔다.

■Goodbye 2024, Hello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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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1층 창가에 ‘소망나무’ 네 그루가 놓여 있다. 관람객들이 새해 소원을 적은 쪽지를 트리 모양 구조에 올려놓고 자유롭게 기부도 한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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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씨는 “희망의 불씨를 보며 한 해를 닫는다”고 말했다. “2024년은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거든요. 회사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야금야금 좀먹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무 준비 없이 퇴사했어요.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연말엔 마침 자신감을 찾아가던 참이었죠. 타이밍이 맞물려서 ‘뭉치니까 되네?’ 하는 희망과 효능감을 느낀 것 같아요.” 영은씨는 “내년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레 겁먹지 않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병철씨는 2024년이 ‘뿌듯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해로 기억될 거라고 했다. “우리 힘으로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한편으론 처음부터 이런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안타까움도 들더라고요. 어떤 해를 기억할 때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 오래 남기 마련이잖아요. 2016년에도 혼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갔었는데 여전히 그해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고등학교 운동부 코치인 이예나씨(35)는 “2025년에는 일상의 안정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취소할까 고민했던 친목모임 송년회는 탄핵안이 가결된 뒤 예정대로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체대화방에선 “그날 응원봉 들고 갈까?” “모여서 탄핵송 부를까?” 하는 농담 섞인 말들이 오간다. 예나씨는 일상을 회복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마음은 늘 헌법재판소 앞 집회 현장에 가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1월에는 (학생들을 데리고) 다른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요. 그전까진 시간이 될 때마다 최대한 자주, 집회에 나가려고 해요.”

일상 회복을 향한 시민들의 소망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휴일인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1층 창가에는 ‘소망나무’ 네 그루가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이 새해 소원을 적은 쪽지를 트리 모양 구조에 올려놓고 자유롭게 기부도 하는 연말 행사다. 매년 이 나무에는 “소중한 사람들 모두 건강하길” “토플 80점 이상 받게 해주세요” “퇴사하고 승승장구하자!” 같은 평범한 소원들이 올라온다.

올해엔 광장의 목소리를 옮겨놓은 듯한 쪽지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윤석열 파면” “민주주의 영원하라” “일어나라, 대한민국” “탄핵, 지금 당장!”…. 첫 번째 나무 아래 칸에는 예나씨와 비슷한 소망이 담긴 쪽지가 있었다. “나라가 안정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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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1층 ‘소망나무’에 ‘윤석열 탄핵’이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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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1층 ‘소망나무’에 ‘국가가 안정되길’이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다. 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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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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