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
지난달 25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 남녀공학 전환 반대를 주장하는 래커칠이 돼있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중단하기로 하며 학생들의 시위는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래커칠' 등 시위로 인한 학교 측 피해 보상 문제로 의견이 대립 중이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말이다. 폐교할지언정,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건 반대한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동덕여대 본관을 점거하고, 학교 건물과 도로 등에 래커로 “공학 결사반대” 등의 문구를 써놓았다. 대학 측은 본관 불법 점거 학생을 형사 고소했고, 래커 제거 비용 등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래커 제거 비용이 과장되었고, 학생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막는 행위라고 맞섰다.
학생들은 대학 재단의 운영에 관여할 법적인 권리가 있을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학교 점거, 혹은 래커 시위 등의 실력행사가 허용될까?
◇래커 복구 비용 수십억 안 내면…주동자 실형까지?
Q.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하면서,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남녀공학 반대’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A. 남녀공학 전환은 대학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의 문제로서, ‘대학의 자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헌법상 보장되는 ‘학문의 자유’는 학문 연구기관인 ‘대학의 자유’를 보장해야 실현됩니다. 그리고 이 대학의 자유를 위해 ‘대학의 자치’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자치권은 기본적으로 학문 연구 주체인 교수와 교수회에 부여됩니다. 학교법인에도 부여되고요.
학생의 경우, 대학의 자치권 주체임을 ▲인정하는 견해와 ▲부정하는 견해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대립하여,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니 학교는 무조건 학생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일보DB |
Q. 학교를 뒤덮은 래커칠 제거 등 복구 비용에 관해 학교 측은 ‘최대 54억원’이라고 하고, 학생들은 부풀려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구비로 다투는 이유는 뭘까요?
A. 민‧형사 책임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은 래커를 뿌린 학생들을 특정해서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때, 복구비가 곧 민사상 손해배상금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복구비를 낮추고 싶을 것입니다.
래커칠한 학생들은 형사 책임도 져야 합니다. 대법원은 회사 건물에 래커로 “결사 투쟁” 등의 문구를 기재한 노동자들을 재물손괴죄로 형사 처벌했습니다. 학교 시설에 “공학 결사반대” 등의 문구를 기재한 것 역시 재물손괴죄에 해당합니다.
재물손괴는 피해 금액, 즉 복구비 규모가 크면 처벌 강도도 올라갑니다. 피해 금액이 수십억 원에 이르는데 이를 변제하지 않는다면 심한 경우 주동자는 실형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Q. 일부 학생들은 “래커에 약품을 도포하는 것만으로도 90%는 쉽게 지워진다”며 “학교가 복구 비용을 과장하며 갈등을 키운다”고 하던데요?
A. 송사에서 피해 금액을 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중요한 일입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복구하느냐에 따라서 복구 비용이 달라집니다. 래커칠을 대충 지우면, 복구비가 낮아지겠지요.
판사, 검사, 경찰은 복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복구 전문가의 견적‧감정 등을 참고해 적정한 복구 비용을 산정할 것입니다. 다만 래커칠한 범위,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복구 비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동덕여대에 뿌려진 래커 제거 비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글. /X(옛 트위터) |
◇단순 가담 학생도 주동자와 똑같이 돈 물어야 할까?
Q. 학교 곳곳에 래커칠했으니,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여러 학생이 분담했을 텐데요. 혹은 누군가 주도했을 수도 있고요. 래커칠한 학생은 자기가 래커칠한 부분에 한정해서 법적으로 책임지면 되는 건가요?
A. 학교 곳곳에 래커칠할 목적으로 여러 학생이 이를 분담했다면, 학생들 ‘각자’가 공동 래커칠 ‘전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집니다. 여러 사람이 역할을 분담해서 공동의 행위를 한 것이니, 공동행위 전체를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민사적으로는 ‘공동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형사적으로는 ‘공범’으로 처벌받습니다.
래커칠 복구비가 학교 측의 주장대로 수십억 원에 달한다면, 현실적으로 대학생이 이를 변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래커칠에 가담한 학생들이 복구비 전액을 변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매우 가혹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 법은 불법 행위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다수의 가해자에게 엄한 책임을 지우기 위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해자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책임 비율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책임 비율을 초과해서 배상했다면, 그만큼의 금액을 다른 가해자에게 분담하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학교 측에 전액 변상한 뒤, 주동자 학생에게 돈을 받는 형식입니다.
동덕여대총학생회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4번출구 인근에서 주최한 '민주없는 민주동덕'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 시도, 학생 의견 외면 등으로 인해 촉발된 일이므로 학교 측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학생들의 정당한 의견 표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 고소는 탄압이고 억압이라고 반박하는데요.
A.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의견을 ‘표현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지, 의견을 ‘관철시킬 자유’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의견관철을 위한 실력행사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적법한 절차와 수단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불법 폭력이 되고 맙니다. 내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고 타인의 생각과 권리를 무시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설령, 학생들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학교 시설에 래커를 뿌리는 등의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가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