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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마지막이 된 ‘성탄 가족여행’…세살배기 등 미성년자도 1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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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9일 무안국제공항에 모인 제주공항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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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179명을 낸 제주항공 7C2216 여객기는 지역의 한 중소 여행사에서 띄운 ‘크리스마스 전세기’였다. 성탄 연휴를 맞아 가족이나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여행을 떠난 이들을 영영 만날 수 없다는 소식에 29일 무안국제공항에 모인 유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탑승객 김모(50)씨는 위암 완치 기념으로 친구들과 태국 여행을 떠나 사고기에 탑승했다. 아들 김모(22)씨는 “10여 년 전 이혼 후 홀로 우리 남매를 키운 멋진 엄마였다”며 “이제 중3 여동생과 둘만 남았는데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이들의 아버지도 수년 전 세상을 떴다고 한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해야 할 것 같다”며 “어머니가 암 치료를 받는 동안 몸이 너무 야위었는데,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도 했다.

이날 오전 사고 소식을 듣고 광주광역시에서 급히 무안공항으로 왔다는 강성훈(60)씨는 사고기에 여동생 강성미(51)씨와 매제 정진철(55)씨가 타고 있었다고 했다. 여동생 강씨는 다섯 남매의 막냇동생으로, 언제나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여행 가기 직전 87세 어머니 옷을 120만원어치 사서 드렸고, 이를 가족 단체 카카오톡방에 자랑했다고도 한다. 강씨는 “어머니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탑승자 조건영(35)씨의 어머니 장안숙(59)씨는 수영을 좋아했다던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연신 오열했다. 한 정부기관에서 근무했다던 아들은 1년 내내 열심히 일하다가 연말 여행에서 참변을 당했다고 했다. 장씨는 “내 아들, 내 새끼, 손 한 번 더 잡아줄걸. 얼마나 뜨겁게 아팠을까”라며 통곡했다.

퇴직 공무원 정정애(62)씨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 이훈희(39)씨는 “어머니가 최근 암이 완치돼 퇴직 공무원 동료들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여행을 떠났다”며 “잘 다녀오시라고 용돈도 드렸는데, 엄마 시신이 많이 훼손됐을 것 같아 슬프다”고 했다.

아들이 사고기에 탑승했다는 손주택(66)씨는 텅 빈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손씨는 이날 아침 동료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들과 공항으로 달려왔다. 손씨는 “37세에 얻은 늦둥이 아들은 29년간 단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은 효자였다”고 말했다. 3년 전 코레일에 입사한 아들 손씨는 이번 여행이 여자 친구와의 첫 여행이었다고 한다.

오인숙(54)씨는 동생 오인경(49)씨를 사고로 잃었다. 동생 오씨는 남편과 함께 연말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오씨는 “동생 부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고 늘 사이가 좋았다”며 “23세 조카가 이번에 비행기에 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홀로 남은 조카가 걱정된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힌 채 공항을 떠돌던 중년 남성은 ‘누구를 기다리느냐’는 기자 질문에 “우리 마누라… 마누라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남성은 공항 안내판에 홀로 선 채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한 노년 여성은 “큰며느리가 비행기에 탔는데, 도착 시간(29일 오전 9시)이 넘어도 연락이 없길래 공항으로 왔다”고 했다. 이어 “며느리가 평생 고생만 하다가 처음 해외여행을 갔는데 이렇게 됐다”고 했다.

사고기는 광주광역시의 한 여행사가 ‘무안 출발! 3박 5일 방콕 나들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139만원짜리 상품이었다. 당초 25일 무안에서 방콕으로 출발, 26일 오전 8시 30분 착륙이 예정돼 있었다. 항공사에 따르면 사고 비행기에는 승객이 총 175명 탑승했는데 연령대는 50대가 40명으로 최다였고 이어 60대(40명), 40대(32명), 70대(23명) 순이었다. 10세 미만(5명)·10대(9명)도 총 14명이었다. 최연소 탑승객은 2021년생으로 올해 세 살이다. 탑승자 상당수가 같은 성을 가진 일가족으로 추정됐다.

[무안=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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