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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김도훈의 엑스레이] [52] 급하니까 한국인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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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Midjourney·조선디자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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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다. 나를 한국인으로 정의하는 요소는 많다. 거의 매일 김치를 먹는다. 외국인이 한국인을 놀릴 때 “너희는 김치를 매일 먹냐?”고 묻곤 한다. 대부분 한국인은 담담하게 “응” 하고 답할 것이다. 김치 맛있게 먹겠다고 김치냉장고도 발명한 종족이다. 피에도 김치 국물이 흐른다.

더는 김치만으로 한국인을 정의할 수 없다. 색목인 유튜버도 김치 담그는 법을 영상으로 만드는 시대다. 나를 한국인으로 정의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엘리베이터 사용법이다. 한국인은 닫힘 버튼 누르는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계기판 근처 사람에게는 헌법에는 없는 의무도 주어진다. 빠르게 닫힘 버튼 누르는 의무다.

층을 잘못 누르면 다시 눌러 취소하는 기능도 한국의 특징 중 하나다. 해외, 특히 서양에서는 이런 기능을 가진 엘리베이터를 찾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 역시 한국인의 급한 성격이 대중화한 기술이다. 이 나라에서는 뭐든 빨라야 한다. 뭐든 빨리 해결해야 한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대결이 벌어졌다.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 헐레벌떡 문을 다시 열고 탔다. 그는 내가 눌러 놓은 층 버튼을 눌렀다. 다시 누르니 당연히 취소됐다. 나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그도 다시 버튼을 눌렀다. 성격 급한 한국인이 양쪽 계기판을 점령한 채 리셋 전투를 벌였다. 한국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끼리 속도 경쟁을 하며 서로를 닦달하느라 진을 빼는 나라다. 나는 워털루에서 패배한 나폴레옹 심정으로 그에게 통제를 허락했다. ‘백 년 평화’를 위한 결단이었다.

2025년 내 목표는 하나다. 급한 성격을 버리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손을 떼는 것에서 시작하겠다. 완료 3초 전 전자레인지 멈춤 버튼을 누르는 한국인 고유의 전통도 버릴 생각이다. 나는 2분을 꽉 채워서 데운 컵라면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1분 57초 데운 컵라면 맛밖에 모른다. 3초만 더 데워도 컵라면은 더 맛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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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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