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장소는 책임자 허락 필요’
수색 영장서 법 조항 예외 논란
법조계 “전형적인 사법 과잉”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수색 대상과 방식이 아닌 법률을 배제하라는 것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영장”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법조인은 “법 테두리 안에서 판단해야 할 법관이 특정 법의 적용을 제한한 것은 ‘입법’의 영역으로, 삼권분립 원칙과 법률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며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했다고 한다. 이 조항들은 군사상 비밀이나 공무원 직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승낙하도록 돼 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이날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경호처가 관저 문을 열지 않을 경우 이 행위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사법 신뢰를 침해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또 대법원에 진상 조사와 이 부장판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영장과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군사상 비밀이나 공무원 직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압수와 수색이 가능하다’는 형사소송법 110·111조의 적용을 배제한 것은 대통령경호처가 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30일 세 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한 윤 대통령의 체포 영장을 청구하며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찾기 위해 수색영장도 함께 청구했다.
그런데 대통령경호처는 앞서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들어 경찰의 대통령 관저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을 승인하지 않았다. 과거 청와대도 검찰 등이 압수 수색을 시도할 때마다 같은 이유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영장에 적힌 압수물 일부를 임의 제출했다. 이 부장판사가 이번 수색영장에 형사소송법 110·111조 적용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은 결국 경호처가 윤 대통령 체포를 막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
◇형사소송법 110‧111조 배제 논란
법조계에선 형소법에 근거해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가 같은 법률의 특정 조항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통 법원은 검찰이나 공수처 검사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할 때 유효기간을 적고, 장소‧신체‧물건‧압수 대상 및 방법 등을 제한해 그중 일부를 기각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요청한 대상의 일부만 허용하는 경우는 많지만, 법률 적용을 제한해 영장을 발부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 다수의 의견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 제도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인정되는데, 판사가 자기 판단으로 법률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영장전담 판사의 ‘삼권분립 위배’”라고 했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이런 영장은 처음 본다”면서 “법률 적용을 제한하는 것을 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는 입법의 영역”이라고 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도 “이 영장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더라도’ 공수처가 대통령 관저를 수색할 수 있다고 한 것인데,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예외로 할 근거가 없어 법 위반 소지가 크다”며 “전형적인 사법 과잉”이라고 했다.
한편, 일단 영장이 발부된 만큼 윤 대통령 측이 집행을 막아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가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예외로 하지 않으면 영장 집행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며 “향후 재판에서 위법한 영장 집행이라고 다툴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발부된 영장은 받아들이는 게 국민의 의무”라고 했다.
◇“공수처, ‘판사 쇼핑’ 성공했네”
이 부장판사의 수색영장 논란이 불거지자,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결국 영장 발부에 유리한 법관을 찾는 ‘판사 쇼핑’에 성공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공수처는 법률상 재판 관할 법원이 서울중앙지법인데, 이번엔 윤 대통령 관저 주소지 등을 고려해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법에 ‘범죄지, 증거의 소재지, 피고인의 특별한 사정 등을 고려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 있다’고 돼 있는 예외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예외 조항을 적용하려면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서울중앙지법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까운 서울 내에 있는 서울서부지법을 선택한 것은 영장 발부를 받기 위한 ‘노림수’였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했는데, 이 기준대로면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희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