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등록자는 큰 폭 증가
존엄하고 아름다운 마무리 위해
장례 등 스스로 결정할 일 많아
“나를 위한 결정, 가족·사회에 좋아”
2023년 10월 13일 오후 서울 삼성동 강남힐링센터에서 참석자들이 웰다잉 특강 도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을 배우고 있다. /오종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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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고향에 내려가니 팔순이 넘은 부모님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다고 알려주셨다. 이 문제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참여했는지 궁금했다. 자주 가는 마을회관, 게이트볼장에서 편안한 임종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퍼진 모양이었다. 자식들에게 알리는 것도 상담 과정에서 교육받은 것 같았다. 그 얘기를 듣고 떠오른 여러 생각 중엔 크지는 않지만 뭔가 부담 하나를 던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문서다. 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2018년 연명의료제도 시행 이후 지난 11월까지 사전의향서 등록자는 267만여 명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배우자와 가족 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 수도 2023년 7만여 명으로, 2019년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 중 65세 이상이 1024만명을 넘고 비율도 20%를 넘었다. 2025년 올해가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첫해인 셈이다.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여러 제도 중 하나인 연명의료제도는 그나마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는 것 같다.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은 원혜영 의원 등이 주도한 것이다. 원 의원은 2020년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한 다음 웰다잉문화운동 대표를 맡는 등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참여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들이 연명의료 외에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상속, 장례 절차 등에 대한 뜻을 정확하게 밝히는 유언장 쓰기도 필요하고, 호스피스 완화 치료 등 임종 직전 어떤 치료와 의료적 돌봄을 받을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인생노트’를 써보는 것도 좋고, 생전 장례식이나 이별 파티 등 내가 원하는 추모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했다. 원 대표는 이런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병원이, 법원이, 장례업체가 결정하게 된다며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초고령사회에 아직도 높은 노인 빈곤을 낮추는 일, 아픈 노인을 치료하고 간병하는 일, 고령자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런 일에는 지금도 기초연금, 건강보험, 노인 일자리 사업 등 형태로 수십조원씩을 투입하고 있다.
반면 원 대표가 하는 일의 공통점은 약간의 홍보·교육 예산 말고는 정부 예산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과 사회 부담을 엄청 줄일 수 있다. 한 해 사망자가 30만명인데 연명의료에 드는 비용이 한 명당 2000만~3000만원이다. 10만명만 연명의료를 중단해도 2조~3조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치매 증가에 따라 더 늦기 전에 정비가 필요한 후견(後見)제도, 유산기부 등도 사회 부담과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제도다.
원 대표는 최근 낸 책 ‘마지막 이기적 결정’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결정할 때 이기적으로 하라고 했다. “결국 나를 위한 이기적 결정이 사랑하는 가족과 이 사회를 위하는 가장 ‘이타적인 결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작은 소망은 많은 사람들이 생전 장례식에 관심을 갖고 실천할 때 자신이 컨설팅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사 사회를 볼 용의도 있다고 했다. 보타이를 매고 생전 장례식 사회를 보는 원 대표 모습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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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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