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29일(현지시간) 10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당시(1977∼1981년)보다 퇴임 후 수십년간 열정적 봉사활동으로 더 빛을 발한 인물이다.
그는 또 미국 역사에서 최장수 전직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새로 썼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 출신인 그는 해군에 입대해 냉전 시기 잠수함 장교로 복무했다.
1953년 아버지의 죽음에 대위로 예편한 그는 고향에서 선친 농장을 이어받아 땅콩과 면화 재배로 성공해 '땅콩 농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카운티 교육 감독위원회 등에서 일하며 지역사회 지도자가 된 그는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도전해 1962년 당선됐다. 이후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 나가 재수 끝에 1971년 성공했다.
어릴 적 흑인 친구들과 함께 자란 그는 주지사 시절 많은 흑인을 공직에 임용했다.
1974년 대권 도전 후 얼마 되지 않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정직'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워 1976년 현직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민주당 후보로 제39대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1979년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과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 내 인권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외교정책은 재선 가도에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79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태와 경제 불황에 인기가 떨어진 가운데 그는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선에서 패했다.
조지아로 낙향한 그는 빈곤층을 위한 국제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 활발한 봉사활동으로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의 길을 꾸준히 걸어갔다.
화려한 공직 경험을 내세워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는 다른 전직 대통령이나 고위 관리들과 달리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며 32권에 달하는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 여기에는 회고록, 기독교 신앙, 취미, 노화 등 여러 분야가 망라됐다.
1982년 설립한 비영리기구 카터센터를 통해 전세계를 누비며 분쟁 해소, 민주주의 촉진, 인권 옹호, 질병퇴치 등에 힘썼다. 카터센터가 모니터한 각국 선거만 해도 미주,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107개에 달하며 아프리카 기생충인 기니 벌레 퇴치에 평생 힘쓴 것은 그의 큰 업적이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국제 원로그룹 '디 엘더스'(The Elders)의 일원으로 정책 자문을 했다.
그는 고향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집사로서 수십 년간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취미는 제물낚시, 목공, 수영이다.
평생 동고동락한 부인 로절린 여사와 2021년 결혼 75주년 기념식을 했다. 슬하에 3남 1녀와 손자 9명(1명 사망), 손녀 3명, 증손자 5명, 증손녀 8명을 뒀다.
다음은 카터 전 대통령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연보.
▲ 1924년 10월 1일 = 미국 조지아주의 소읍 플레인스에서 출생
▲ 1942년 = 조지아 사우스웨스턴 대학에서 조지아 공과대학교로 편입
▲ 1943년 = 미 해군사관학교 입학해 어릴 적 꿈인 해군 입대 성취
▲ 1946년 = 해군 장교 임관, 로절린 스미스와 결혼
▲ 1946∼1952년 = 잠수함 등에서 복무, 아들 3형제 잭·칩·제프 출생
▲ 1953년 = 부친 얼 카터가 암으로 사망. 대위로 제대해 플레인스 귀향. 땅콩 재배 등으로 많은 돈을 벌어 '땅콩 농부' 별명
▲ 1962∼66년 = 조지아주 상원 의원 선출
▲ 1966년 = 주지사 선거서 낙마
▲ 1966년 = 넷째 자녀 딸 에이미 출생
▲ 1971년 = 주지사 선거 재도전해 성공, 다수의 흑인을 공무원과 판사에 임용
▲ 1974년 = 대권 도전 선언
1979년 당시 카터 대통령 |
▲ 1976년 = 현직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누르고 제39대 대통령에 선출
▲ 1977년 = 대통령 취임, 파나마 운하 협정 서명
▲ 1978년 = 미국과 중국 전면적 외교관계 수립,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중재·체결
▲ 1979년 = 교육부 설립.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미 대사관 점거 및 미국 외교관과 직원 등 52명 인질 사태 발생. 옛소련과 일부 공격용 전략무기 제한을 위한 SALT Ⅱ 협정에 서명, 한국 공식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과 정상회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인권상황 놓고 격한 설전
▲ 1980년 = 이란서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 실패. 대선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져 재선 실패
▲ 1981년 = 대통령 퇴임 직전 이란이 미국인 인질 석방, 부인 로절린 여사와 플레인스로 귀향
1981년 부인 로절린(가운데), 장모와 플레인스로 귀향한 카터 전 대통령 |
▲ 1982년 = 애틀랜타에 비영리기구 카터센터 설립
▲ 1987년∼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미국 등서 분쟁 해결, 민주주의와 개발 촉진, 기아·질병·인권 유린 등에 맞서 활동, 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 매년 일주일씩 국제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자원 봉사
▲ 1994년 평양 방문, 김일성 주석과 담판해 제1차 북핵위기 해소의 결정적 전기 마련
▲ 2002년 = 아이티, 보스니아 등 국제 분쟁 해결과 민주주의 및 인권 신장 등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
▲ 2010년 = 2차 방북 때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사면 및 귀환 성사
▲ 2011년 = 인도적 목적으로 3차 방북
▲ 2015년 = 간암 발병 사실 공개, 이후 7개월 만에 '완치' 선언
▲ 2021년 = 로절린 여사와 결혼 75주년
▲ 2023년 11월 19일 = 로절린 여사 별세
▲ 2024년 12년 29일 = 플레인스에서 향년 100세로 별세
2016년 당시 카터 전 대통령 |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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