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혼자 앉아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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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법의 지배가 확립되지 않고 공적인 사회안전망이 부재했던 전근대 사회의 일반인은 ‘개인’으로 살 수 없었다. 가족, 부족, 지역 공동체를 떠나는 일은 폭력과 굶주림의 공포에 자신을 내맡기는 무모한 행위로 여겨졌다.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해주는 ‘조직’과 그 우두머리에게 충성하며 ‘개인’을 억누르고 죽이는 삶은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의 숙명이었다.
중세 봉건사회는 위험의 공포가 조직에 충성하는 사회의 기초가 되었던 사례의 전형을 보여준다.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서유럽은 공권력의 부재와 외적의 빈번한 침략으로 인해 극도의 혼란과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사람들은 강자에게 의탁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군사적인 보호를 받고자 하였으며, 강자는 이들의 복종으로 ‘조직’의 힘을 키우고자 하였다. 중세사의 권위자 마르크 블로크는 이와 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복종과 보호의 유대관계”를 유럽 봉건사회의 본질로 보았다.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해에 종속되었다. 중세의 기사는 국가나 국왕이 아닌, 직속 상위 영주에 대해서만 충성을 바쳤다. “왕의 가신의 가신은 왕의 가신이 아니다”라는 진술은 이를 잘 드러낸다. 농민들은 영주의 보유지를 경작하는 부역과 자의적으로 부과된 각종 부담에 시달렸으며, 이들의 작물 선택과 농경 방식은 촌락공동체에 강제되었다. 자유로운 시민의 권리와 자치권이 존재했던 중세 도시에서도 개별 상공업자는 길드(동업조합)의 엄격한 통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역사적 경험은 조직과 그 우두머리에게 충성하는 사회적 특성이 경제 발전에 해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이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할 유인과 기회를 잃고, 사회적·지리적 이동성이 제약되며, 폭압과 주술이 합리적 이성을 억누르는 환경은 혁신과 진보를 가로막는다. 실제로 전근대 유럽에서는 기술의 진보가 더뎠고, 농업 생산성이 줄곧 낮았으며, 생활 수준은 개선되지 않았다. 흑사병의 충격으로 봉건제가 해체된 뒤에야 서유럽은 비로소 근대화와 경제 발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12월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한 21세기 대한민국이 여전히 조직에 충성하지 않고 개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나라임을 드러낸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내린 지시가 개인의 상식과 양심은 물론 헌법과 법률까지 무시하게 만드는 상황, 국민과 국가에 대한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로서의 책무보다 조직의 이해와 그 우두머리에 대한 의리를 우선시하는 태도, 개인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한 정치인이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비난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묘하게 중세 봉건사회의 모습과 겹친다.
어찌 이번 일만 그러할까. 국가와 국민이 아닌 사적인 조직에 충성한 군인들에 의한 반란의 역사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 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정부, 정당, 군대를 포함한 여러 기관이 비선 조직에 휘둘리며 망가진 사례는 차고 넘친다. 조직의 비리에 저항하고 이를 폭로한 직원이 배신자로 내쳐지고, 지도부를 비판하며 정당의 개혁을 주장한 정치인이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유능하고 합리적이었던 인재들이 조직의 압박에 서서히 무릎을 꿇고 그들만의 논리에 포섭되어 ‘조직원’이 되어가는 과정은 느리게 전개되는 좀비 영화의 장면 같다.
21세기 한국에서 발견되는 중세 봉건사회의 모습은 여전히 법의 지배가 너무 느슨하고, 그 빈틈을 채워줄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 관행이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을 드러낸다. 힘을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법과 규정을 우회하여 자의적인 보복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 조직이 강요하는 불의와 부당함을 거부할 때 겪게 될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이익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조직에 충성하며 개인으로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했던 문화와 관행은 한때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준 요인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부유해지고 다원화된 21세기 한국에서 조직에 대한 충성의 교조는 시대착오적인 유산일 뿐이다. 계엄 선포 뒤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군인들과 추운 거리에서 형광봉을 흔들며 탄핵을 외친 젊은이들의 모습은 상식을 따르는 합리적인 개인이 우리 사회의 미래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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