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호떡집 앞 대기 줄이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도 줄을 섰다. 처음으로 비닐 바람막이 안쪽을 보게 됐는데 녹차 호떡이라 쓰여 있고 그 밑에 “통행에 지장이 없게 한 줄로 서 주세요”라는 글귀가 보였다. 좁은 인도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이 가게 주인으로서 신경이 쓰였나 보다. 생각해 보니 그곳을 지나칠 때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길을 막기도 했던 것 같았다.
내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호떡을 다섯 개 주문했다. 주인은 내게도 원하는 개수를 물었다. “세 개요.” 주인은 둥그런 판에 기름을 붓고 둥그런 밀가루 반죽을 올려 호떡을 굽기 시작했다. 여덟 개를 동시에 굽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지만 손놀림은 매우 능숙했다. 앞사람이 다섯 개 포장한 것을 들고 갔다. 나머지 세 개를 종이 봉지에 넣으려다 말고 주인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너무 구워졌나요?” 아닌 게 아니라 여러 개를 한 번에 만드느라 그랬는지 살짝 탔다. 아니, 타기 시작한 순간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허용 범위라고 할 수도 있었다. “아 괜찮아요.” 그러나 주인은 과감하게 세 개를 한쪽으로 치우고 호떡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타임이 지났어요.” 그게 그의 말이었다.
나는 약간 미안했다. ‘괜찮아요’라는 대답이 0.5초쯤 늦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을 아무 말 없이 지지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흔히 골든 타임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좋은 타임’이라고 하니 뭔가 정확하고 아름답구나. 그리고 그야말로 가장 좋은 타임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호떡을 봉지에 싸들고 귀가했다. 그의 가장 좋은 타임이 그렇게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 1월 일사일언은 김영준씨를 포함해 에노모토 야스타카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저자,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 진담 ‘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저자, 나연만 소설가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김영준·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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