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앞둔 아빠와 엄마 함께 여행
큰딸·작은딸 가족 무안공항 참변
하염없는 기다림 - ‘제주항공 참사’로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 살던 배모(78)씨 일가족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배씨 가족이 키우던 반려견 ‘푸딩이’가 주인을 기다리는 듯 도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사고로 이 집에는 푸딩이만 남았다. /TV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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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 흰색 개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개는 사람이 다가서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홱 돌아섰다. 31일 전남 영광군 군남면의 한 마을 골목을 하염없이 방황하는 개의 이름은 ‘푸딩이’라고 했다. 제주항공 참사 최고령 희생자 배모(78)씨 일가족 9명이 키우던 반려견이다.
배씨 가족은 이 마을에서 아내 임모(64)씨와 큰딸, 여섯 살 외손녀 정모양과 살았다. 광주광역시에서 일하는 큰사위는 주말마다 집을 찾았다. 지난달 25일 크리스마스 저녁 태국으로 3박 5일 여행을 떠났다. 아내와 큰딸 부부와 정양, 작은딸과 그의 세 자녀와 함께였다. 팔순을 앞둔 배씨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지난달 29일 태국에서 돌아와 북적거려야 했을 배씨 집은 적막했다. 이날 제주항공 참사로 배씨 일가 9명이 모두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집 대문 앞에서 푸딩이가 불안한 듯 돌아다녔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가 날 때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귀를 쫑긋거리다가 다시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았다. 배씨가 자주 찾았다던 마을회관 현관까지 와 주인을 찾는 듯 여기저기 냄새를 맡기도 했다.
“집에 살던 모두가 한날한시에…. 개만 남았는데 어찌야 쓰까잉….” 불 꺼진 배씨 집을 오가는 주민들이 혀를 끌끌 차며 푸딩이를 바라봤다. 일부 주민은 “너 이제 어떡하니”라며 쓰다듬기도 했다. 주민 배후덕(77)씨는 “하루 종일 푸딩이가 방황하길래 우리 집에 가자고 하면 집 앞까지만 따라오고 다시 자기 집으로 되돌아간다”며 “저 개는 이제 누가 키우냐”고 했다.
배씨 집 앞에 큰딸이 몰던 소형차가 주차돼 있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가 뒷유리에 붙어 있었다. 외손녀 정양은 이 마을의 유일한 어린이였다. 배씨의 큰딸은 매일 이 차로 읍내 유치원까지 정양을 통학시켰다. 큰딸이 마흔 넘어 어렵게 얻은 정양은 내년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었다. 또래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타던 정양에게 푸딩이는 소중한 친구였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비행훈련원 정비팀이 남긴 추모 메시지 -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 국제공항 활주로 철조망에 흰 국화와 한국교통대 비행훈련원 정비팀이 쓴 것으로 보이는 추모 글이 걸려 있다. 이날 철조망 곳곳에 희생자의 동료, 가족 등이 쓴 추모 글이 걸렸다. /장련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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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은 활달한 성격에 재롱도 많아 마을 주민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주민 김모(73)씨는 “정양이 평소 킥보드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어른들마다 인사를 했다”며 “마을 사람들 모두가 ‘00아, 00아’ 부르며 그렇게 이뻐했다”고 했다. 참사 나흘 전 여행 직전 열린 읍내 교회 성탄 예배 때 정양이 사회를 맡았다. 목에 꽃다발을 걸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정양을 보며 마을 노인들은 “어쩌면 저렇게 귀여울까”라며 즐거워했다.
배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토박이였다고 한다. 평생 농사를 짓다가 20년 전부터는 양봉을 시작했고 틈틈이 배추 농사도 지었다. 부지런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에 궂은일을 도맡아 마을 사람들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이장과 영농협회장, 지역 농협 감사 일도 맡는 등 ‘동네 기둥이자 일꾼’이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팔순을 앞뒀음에도 배씨는 IT 기기 사용에 능했다고 한다. 2010년 ‘정보화 마을’로 지정되자 사무장 일을 하며 주민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 등을 손수 가르쳤다. 나이가 들면서 딸들이 “이제 그만 좀 쉬라”고 했고, 이에 못 이겨 배씨는 지난해 봄 양봉을 그만뒀다. 배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제야 좀 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고 했다.
첫 해외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마을 사람들은 TV에서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배씨를 떠올렸다. “애들과 비행기 타고 태국 간다”고 즐거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배씨 일가족이 사고기에 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70명이 넘는 주민 전부가 마을회관으로 뛰어왔다. 주민 한상태(70)씨는 “밤새 회관에 머물면서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뉴스를 계속 봤다”며 “여행 가기 전에 밝은 얼굴로 ‘잘 다녀올게’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갈 줄 몰랐다”고 했다.
이번 참사로 배씨의 작은사위는 졸지에 장인·장모, 아내와 세 자녀를 잃었다. 마을 사람들은 작은사위의 안위를 걱정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포클레인 일을 하던 배씨의 작은사위는 원래 태국 여행을 함께 가려고 했지만, 일이 바빠 동행하지 못했다. 참사 소식을 들은 그는 “나만 살아 무슨 소용이냐”며 오열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배씨의 작은사위를 “성실하고 어른들에게 잘하는 사람”이었다며 “포클레인을 몰고 와 마을 일을 돕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31일 오후까지 배씨 일가족 9명 중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이들은 3명이다. 푸딩이의 친구였던 정양과 배씨의 작은딸, 작은딸의 초등학생 막내아들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영광=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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