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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앙상한 기틀에 더해진 문학적 풍성함…‘다음’을 기대하게 해[신춘문예 - 소설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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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5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위원들이 지난달 18일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심사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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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은 응모작 수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수준 자체가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다는 의견을 모든 심사위원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본심에 오른 13편의 작품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예심에서도 여럿 발견되어 심사위원 개개인의 취향과 안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우수한 작품이 많을수록 심사는 곤란해지기보다 즐거워지는데, 좋은 문학을 향한 요건의 최소 기준보다 최대 기준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젊은 여자의 평범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발화’는 이윽고 돌봄을 편취당하는 여성의 동난 내면을 경유하며 ‘아이’의 의미를 동물처럼 변환시키는 문체로 전진하는 소설이다. 심사위원들은 결국 아이를 탄생시키고 마는 이 작품의 발화 방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다니게 되었다는 경험을 고백했다.

‘날갯소리’는 평이한 부동산 갈등 소재를 채택하는 듯 보였지만, 강렬한 마지막 이미지를 남김으로써 작가의 심상치 않은 공력을 예측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돈이라는 전횡에 맞서 그 어떤 전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의 시점에서 몹시도 자연적이며 징그러운 복수의 눈동자를 영영 잊을 수가 없었다.

‘관희는 거울 거울은 관희’는 가난하고 아픈 연인이 ‘개처럼’ 되어 혹은 ‘개 같은’ 사람들과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용이다. 앙상한 기틀을 가지고 문학적 풍성함을 더하는 감각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인간적 사랑스러움과 혐오스러움을 세련되게 표현하면서도 빈곤의 현실을 묵직하게 관철하는 문학적 이중 발화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심사는 유독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기보다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로 다른 현실을 발견하게 하는 일을 체험케 했다.

당선작을 골몰하던 중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합의의 기준점으로 삼기로 했고,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관희는 거울 거울은 관희’가 신춘문예라는 응모의 요행에 가장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고를 보내주신 모든 작가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드리며 당선작을 향한 축하의 박수를 아끼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강지희, 김인숙, 오은교, 정용준, 정지아(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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