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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현장] 오열에 묻힌 보신각 타종 소리... 공항에서 새해 맞은 희생자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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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시간은 그날 멈춰 버렸다"
분향소 차려지자 새벽까지 애도 행렬
한국일보

1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있었던 전남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추모객이 참사 희생자를 위해 남긴 메모가 공항 계단에 붙어있다. 무안=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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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 댕, 댕, 댕"

2025년 1월 1일 0시가 되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모인 무안국제공항 한편에 놓인 TV에서 보신각 타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종소리는 참사 희생자 유족과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오열에 이내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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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꾸려진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1일 새벽에도 조문객들의 발걸음은 계속됐다. 무안=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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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대부분은 TV 앞이 아닌 공항 1층 합동분향소나 유족을 위해 마련된 구호 텐트 안에서 멍하니 새해를 맞았다. 희생자 김모(42)씨의 형이라고 밝힌 한 유족은 "우리 가족은 시간이 그날(사고 당일) 멈춰버렸는데, 새해가 무슨 소용인가요"라며 "'해피 뉴 이어' '해피 뉴 이어' 하는데 우리가 '해피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전날 오후 7시 꾸려진 공항 합동분향소에는 새벽까지 애도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희생자 시신 대부분이 아직 유가족에 인도되지 않은 상황이라, 조문객 대부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사고로 동갑 친구를 잃은 강모(22)씨는 지인 4명과 함께 새벽 1시 30분 이곳에 왔다. 그는 "아직도 안 믿긴다. 카카오톡 1도 안 사라지고(고인이 메시지를 읽지 못했다는 뜻) 그래서... 그래도 얘한테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침통해했다. 친구의 영정사진을 자신의 휴대폰에 담고 한동안 합동분향소 제단 앞을 서성이던 이들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강씨는 20분 뒤 다시 돌아와 "저 조문 한 번만 더 해도 되는 거죠? 꽃 한 번 더 올려도 되는 거죠?"라고 묻기도 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친구 얼굴을 하염없이 보던 그도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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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꾸려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1일 새벽 유가족이 지쳐 쓰러져 있다. 무안=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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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엔 딸을 잃은 노부부가 방문했다. 남편은 지팡이를 짚은 채 내내 통곡하는 아내를 힘겹게 부축했다. 제단에 기대 비명을 지르던 아내는 "아유 내 새끼... 불쌍해서 어찌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부부의 딸은 임신 3개월 차였다고 한다. 본격 태교 전, 친구와 함께 방콕 여행을 떠난 게 딸의 마지막이 됐다. 아내는 "손주 이름이라도 미리 지어줄걸. 오래 살라고 이름 지어줬으면 더 살았을 거 아녀"라고 한탄했다. 남편은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꽉 깨문 채 "자주 와서 사진 보면 된다"고 겨우겨우 아내를 다독였다.

공항 1층에 만들어진 공용 휴대폰 충전소에 휴대폰을 꽂고 희생자에게 계속 전화를 거는 유족도 보였다. 한 유족은 친구에게 "우리 엄마 아빠 너무 착해. 비행기 타면 '비행기 모드' 해야 한다고 진짜 해둬서 컬러링도 못 들어"라며 탁자 위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무안=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무안=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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