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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 | 작가
“되게 부드러워서 삼키기 싫은데 씹다 보면 삼켜져요.”
한동안 큰 인기를 얻었던 넷플릭스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한 심사위원이 부드러운 고기 질감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심사평을 듣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음식을 삼키는 행위가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너무도 쉽게 박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요양원 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재활치료사 출신으로 재활과 요양을 결합해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2024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장기요양 우수 사례로도 꼽힌 곳이었다. 기대를 품고 신청한 강의였다. 요양원에 가더라도 재활을 잘해서 다시 집으로 오는 사례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요양원 가면 죽어서 나온다’가 아니라 ‘요양원 가서 잘 쉬고 잘 먹고 잘 운동해서 나왔다’는 말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재활의 관점에서 노인요양 분야의 난제 중 하나로 ‘연하장애’를 꼽았다. 연하장애란 삼키는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입에 음식을 넣고 잘게 부수거나 으깬 뒤에 혀를 입천장에 붙여 진공 상태를 만든다. 그러면 기도는 닫히고 식도는 열린다. 열린 식도를 따라 음식은 위에 안착한다.
만약 이 중 하나만 유기적으로 수행되지 않으면 사레가 들려 기침이 나오고, 음식이 기도로 자주 넘어가면 흡인성 폐렴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얼굴 근육을 마사지하거나 입 모양을 움직이는 연습으로 삼키는 근육을 강화하기도 하고, 일반식에서 미음이나 수프 같은 부드러운 식사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하장애가 더 심해지고 부드러운 식사도 어렵다면 어찌해야 할까?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뭘 중시하시겠어요? 노인의 인권입니까? 아니면 생존입니까? 저는 죽도록 내버려둘 순 없습니다.”
그의 말에는 어떤 자부가 느껴졌다. 죽거나 살거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노인을 ‘효’의 정신으로 책임진다는 직업윤리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노인요양 현장에서 없어선 안 될 장치가 소위 ‘콧줄’이라고 불리는 ‘엘(L)튜브’다. 콧줄은 음식을 삼키지 못하더라도 코를 통해 영양을 위에 주입한다. 그 줄로 인해, 음식을 목에 넘기지 못해서 죽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콧줄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너무 부정적이라고, 인지가 저하된 상태에서 콧줄을 끼면 빼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야 하는데 그걸 반인권적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말이지 강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콧줄의, 콧줄에 의한, 콧줄을 위한’ 내용이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우수 사례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듣기에는 죽지도 못하게 하면서 계속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수용소 같았다.
뒤이어 인권 침해로 신고당할 때 대응할 수 있는 보호자 각서와 동영상 촬영 등 노하우를 전할 때는 영악한 운영자의 면모도 드러냈다. 노인요양 창업에 필요한 시장조사와 운영 매뉴얼까지 원스톱으로 전수하는 컨설팅 업체도 홍보하는 그였다. 요양원에 가면 ‘죽어서 나온다’가 아니라 ‘죽지도 못한다’는 말이 더 적확해 보였다.
연하장애라는 난제를 풀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노인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본 게이유병원의 의사 오쓰카 노부오는 책 ‘돌보는 힘’에서 흥미로운 사례를 들려준다.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는 노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주면 잘 삼킨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경험적으로는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거나 맛없는 음식일 때 목에 더 잘 걸린다고 말한다. 술을 먹고 싶은 노인은 가끔 정종을 데워 먹어도 좋다고까지 강조한다.
삼킴을 권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돌봄의 시장화가 우리에게 제일 마지막 순간까지 박탈하는 건 삼킴의 권리가 아닐까? 다시 ‘흑백요리사’의 심사평을 떠올린다. 음식의 풍미와 부드러운 목 넘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 우리가 늙어서 죽는 날까지 그 표정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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