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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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혐오와 숭배, 양극단 이미지를 한 몸에 지닌 특이한 동물이다. 온기 없고 징그러운 외모, 한입에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 엽기적 사냥 방식, 거기에 맹독까지 있으니 사랑받을 구석을 찾을 수 없다. 구약 창세기에선 이브를 유혹하는 사탄이고 그리스 신화의 괴물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뱀이다.
▶어릴 적 시골 외가에 갔다가 뱀의 이미지를 깨는 일이 있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시골엔 뱀이 많았다. 외할머니는 뱀을 보고 놀란 손자에게 “내가 어렸을 땐 서까래 아래 앉아 있으면 뱀이 머리 위로 떨어질 만큼 많았다”며 “뱀은 재산을 지켜주는 영물이어서 내쫓으면 가세가 기운다”고 하셨다. 농경 사회에서 뱀은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아먹는 익수(益獸)여서 가뜩이나 쌀이 귀한 농가에 고마운 존재라고도 했다. 이런 믿음이 민간의 뱀 숭배로까지 발전했다는 걸 훗날 알게 됐다.
▶뱀은 이로운 짐승일 뿐 아니라 천연 방제 기능도 있다. 근대 이전 농가에는 고양이 수가 적었기 때문에 병균을 옮기는 쥐를 구제할 목적으로 일부러 독이 없는 구렁이를 집 안에 들이고 살았다. 이런 기능이 상상력을 자극해 그리스 신화에선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다니는 치유의 지팡이를 뱀이 칭칭 감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군의 의무 부대 마크 등에 뱀 문양이 쓰이는 이유다. 우리 역사에는 수호자 캐릭터로 나온다. 신라 경문왕이 침소에 들면서 “나는 뱀이 없으면 편히 잠잘 수 없다”고 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왕을 지키는 병사를 뱀에 빗댄 것으로 해석한다.
▶뱀이 인간뿐 아니라 자연의 수호자로 훼손된 생태계를 치유하는 기능도 크다는 사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자연계에서 뱀은 중간 포식자다. 작은 쥐나 개구리를 먹고 족제비나 멧돼지 같은 큰 짐승의 먹이가 된다. 먹이사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여서 뱀이 없으면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다. 한반도엔 이런 뱀이 11종 서식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뱀이 멸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이 2025년 뱀의 해를 맞아 제주도 비바리뱀 구조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한다. 비바리라는 이름은 정수리부터 목덜미까지 검은 줄무늬가 마치 처녀의 제주도 방언인 비바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1981년 한라산 성판악 근처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10여 년 전부터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뱀은 다산과 생명력의 상징이다.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맞이한 새해, 우리 사회도 뱀처럼 힘찬 생명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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