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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모던 경성]여성 첫 ‘세계일주기’낸 박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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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1941년 출간, 예루살렘,베들레헴 등 ‘성지순례’ 元祖

조선일보

박인덕은 1931년 10월 5년간의 미국 유학과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국했다. 미국, 유럽은 물론, 그리스, 터키, 팔레스타인 등 기독교 성지를 둘러본게 독특하다.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일주기'(1941)를 출간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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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30년대 세계일주에 도전한 유명인으로는 나혜석, 허헌, 이순탁 등이 있다. 이들은 신문, 잡지에 여행기를 남겼다. 일제시대 세계일주기를 책으로 출간한 이는 딱 둘이다. 연희전문 교수 이순탁의 ‘최근세계일주기’(1934, 한성도서)와 여성 교육자이자 기독교운동가 박인덕의 ‘세계일주기’(1941, 조선출판사)이다.

1916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박인덕(1896~1980)은 졸업 직후 이화학당 음악, 영어 교사로 일한 신여성이다. 1919년 3.1운동때 학생들을 선동한 혐의로 4개월간 투옥됐고 제자 유관순의 옥고를 목격했다. 석방 이후 배화학당 교사로 있으면서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회장을 맡아 금주운동을 펼쳤다. 피아노 솜씨도 뛰어나 음악회에 종종 출연했다. 이런 활동으로 당시 이름이 꽤 알려진 유명인이었다.(‘음악과 영어로 일시 소문이 높던 배화여학교 교사 박인덕’, 조선일보 1924년12월14일)

조선일보

1916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박인덕은 1926년 도미, 웨슬리언대를 나와 콜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31년 2월 선교 강연차 영국에 건너가 그해 10월 귀국때까지 유럽과 터키,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여행했다.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일주기'(1941)를 출간했다. '세계일주기'에 실린 저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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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달까지 두번 왕복할 거리’

1926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웨슬리언 대학에 편입, 졸업한 뒤 1930년 콜럼비아대에서 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박인덕은 대학생 선교운동에 뛰어들어 강연을 다녔고, 1931년 2월 대서양을 건너 영국까지 선교 강연을 떠났다. 이후 8개월간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과 소련은 물론, 터키와 오늘날의 시리아, 이스라엘을 거쳐 이집트 카이로까지 여행했다. 이후 인도 싱가포르 상해와 북경을 거쳐 1931년 10월6일 경성에 도착했다. 1926년 8월2일 경성역을 출발해 미국 유학에 오른지 5년 만의 금의환향이었다.

박인덕은 1935년11월에도 미국 기독교단체 강연 초청을 받아 북미 여행을 하다 1937년 9월 귀국했다. 두 차례에 걸쳐 약 5년간 세계 35개국을 다니면서 ‘지구에서 달까지 두번을 왕복할 거리’를 여행했다고 한다.’일제시기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여행지를 여행하며 수많은 외국인들을 만났던 인물’(김성은, 일제시기 박인덕의 세계인식: ‘세계일주기’(1941)를 중심으로 179쪽)로 꼽히는 이유다.

1931년 10월 박인덕이 미국 유학과 세계일주를 마치고 귀국하자 환영회가 떠들썩하게 열렸다. 유명 요리점 명월관에서였다. 윤치호가 개회사를 하고, 앨리스 아펜셀러 이화여전 교장 등 저명인사 6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룰 정도였다.(‘박인덕여사 환영회 성황’, 조선일보 1931년10월28일)

조선일보

박인덕이 1941년 출간한 '세계일주기'. 5년간 세계 3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담았다.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일주기'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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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살 때부터 세계일주 동경”

‘일즉이 십여살 때부터 세계일주를 동경하고 늙어죽기전 한번 해보랴고 꿈을 꾸고 희망하고 스스로 믿는 신(神)께 기도도 하고 여기에 전심전력하다시피 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과시 세계일주 할 기회를 두번 얻었다.’(‘세계일주기’ 머리말)

박인덕은 어릴 적부터 세계일주가 꿈이었다고 썼다. 박인덕의 세계일주는 화가 나혜석, 영친왕비 이방자, 한국인 첫 스웨덴 경제학사인 최영숙 등 유럽과 아시아를 여행한 당시 여성들은 물론, 이순탁, 허헌 등 동시대 세계여행자와도 구별된다. 그리스, 터키는 물론 현재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 나사렛, 여리고, 요단강, 베들레헴 등 기독교 성지(聖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코스를 일정에 넣은 것 자체가 기독교인 박인덕의 정체성 덕분이다. 그가 남긴 ‘세계일주기’엔 성지 순례라는 의식이 분명하고, 순례자로서의 감정 또한 여실히 드러나 있다.

◇다메섹 가는 길에 선 박인덕

‘땅속에서 이 골목 저 골목 무시무시한 곳을 지나며 이 굴을 파던 독신자(篤信者)들을 생각하니 그들은 생명을 내놓고 피를 흘려가며 하나님을 섬기었다. 피는 곧 생명이다. 피 없는 곳에 생명이 없고, 피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156쪽)

로마 카타콤(성 세바스티안)을 찾은 소회를 이렇게 썼다. 사도 바울이 회심(回心)한 다마스쿠스(다메섹)가는 길에선 ‘산꼭대기에 서서 원근 경치를 바라보니 앞에는 지중해의 푸른 물이 멀리 바라보이고 베이루트 항에는 건물과 배가 그림같이 보인다. 운전수의 말이 이 길에서 성경에 있는 사도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잡아가두려고 다메섹을 가다가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장님이 되어 다메섹까지 이끌려갔다고 한다. 이곳에 서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불량한 양심을 가지고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없었을 것이다.’(175쪽)

조선일보

박인덕은 미국 유학 이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였다. 1916년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이화학당 교사로 일하다 3.1운동에 참여, 4개월간 투옥당하기도 했다. 석방후 배화학당 교사로 일하면서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회장으로 활약했다. 조선일보 1924년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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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배당’ 상품화 우려

예루살렘에선 예수 감람산 기도를 떠올린다. ‘솔로몬의 성전 터를 지나 감람산에 올라가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예수가 이곳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시며 탄식하고 우셨던 것이 기억되었다. 여기서 다윗의 성터 골고다로 가는 길을 밟으며 예수의 최후의 비극을 상상하였다.’(179쪽)

성지(聖地)의 상품화, 관광지화도 걱정한다. ‘나사렛에 들어서서 예수가 살던 집터에 예배당을 지은 것을 보러가니 정문 옆에서 목수들이 일을 한다. 예배당 안을 한 바퀴 돌아나오며 생각하니 그 예배당을 그 자리에 지은 것은 일종의 상품화한 것같다. 예수 나신 자리에 교당을 지었다 하고 관광자를 많이 이끌자는 것같다.’(178쪽)

◇ “귀막으라고 솜 두 조각 나눠줘”

박인덕의 세계일주 중 이례적인 것은 마지막 국내 구간에서 비행기 여행을 택한 것이다. 박인덕은 중국을 거쳐 기차편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사흘을 여기서 묵은 뒤 6인승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다. 승객은 그와 동경제대생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행기에 오를 때에 공책에 연필 한 자루와 이 주머니에 솜 두조각 넣은 것을 준다. 연필, 공책은 비행기에서는 프로펠라 소리에 필담밖에 못할 테니까 주는 것이오, 솜은 두 귀를 막으라는 것이다.’

‘11시 정각이 된즉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더니 비행기가 동하며 스르르 앞으로 몇 마장 나가더니 땅을 뚝 떠서 한없이 자꾸 올라간다. 땅이 점점 멀어지며 사람 나무 집들이 적어 보이더니 모란봉도 발아래요 대동강이 실오래기 처럼 보인다. 평양 떠난지 20분쯤 되어 흰 구름이 이 비행기 아래로 쫙 퍼지니 땅은 보이지 않고 비행기는 구름 바다위로 나른다.’

◇평양-경성 1시간만에 도착

당시 보기 힘든 항공 여행기록이다. 1929년 9월 동경에서 오사카, 후쿠오카, 경성, 평양, 신의주, 대련을 잇는 여객 노선이 취항했다. 박인덕은 비행기 티켓값이 기차 1등실 차비와 같다고 했다. 일본여행협회가 1932년(소화 7년) 발행한 관광안내서 ‘여정과 비용개산’(旅程と費用槪算)에 따르면, 경성~평양 항공 구간은 13원이었다.

백화점 점원 월급이 20~30원, 신문기자 월급이 50~60원하던 시절이었으니 상당한 고액이었다. 경성의 돈많은 부호들이 평양 기생을 비행기삯까지 주며 초청해 연주를 듣는다는 기사(‘순정을 노래하는 북국의 가인’, 조선일보 1937년 1월6일)가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는 보통 열차로 7시간 걸리던 여정을 1시간 만에 연결해준 첨단 문명의 이기였다. 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세계일주에 도전한 그의 마지막 일정을 누군가 후원했던 모양이다. ‘세계일주기’ 독자들에겐 세계일주와 항공 여행 모두 신기한 독서체험이었을 것이다.

◇참고자료

김성은, 일제시기 박인덕의 세계인식: ‘세계일주기’(1941)를 중심으로, 여성과 역사 15, 한국여성사학회, 2011

장형철, 은봉 박인덕의 ‘세계일주기’에 나타난 성지순례 이해, 운봉연구 2, 인덕대운봉연구소, 2021

박인덕, 세계일주기, 조선출판사,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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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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