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자년은 10셉틸리언(10의 24제곱·Septillion)년을 말한다. 인간 두뇌로 가늠조차 안 되는 길고 긴 시간이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현재 컴퓨터로 10자년은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단 5분 만에 풀어내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다면? 산업혁명이나 인터넷·모바일·AI 혁명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상상 속 세상의 단초를 마련했다. 2024년 12월 11일 구글은 새로운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컴퓨터를 활용하면 10자년이 필요한 문제를 5분에 풀어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인 프런티어는 물론, 5년 전 구글이 1만년 걸리는 문제를 몇 분 안에 풀 수 있다고 발표했던 성능보다 크게 빨라졌다.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초고속 연산이 가능해 ‘꿈의 컴퓨터’로 불린다. 슈퍼컴퓨터를 포함한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 중 하나의 값만을 표현할 수 있는 비트(Bit)로 정보를 처리한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상태에서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큐비트(Qubit)로 연산한다. 큐비트를 활용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동시에 표현하고 연산 횟수를 줄여 빠르게 최적의 답을 찾는다.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질수록 막대한 계산량을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 정책당국은 2024년 AI와 양자컴퓨터 분야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유엔(UN)은 2025년을 ‘세계 양자 기술의 해’로 규정지었다. 양자컴퓨터는 AI, 신약 개발, 우주공학, 재료과학, 금융 모델링, 기후 변화 등 인류가 풀지 못한 다양한 숙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의 양자컴퓨터에는 자체 개발한 양자 칩 ‘윌로우(Willow)’가 장착됐다. 구글은 이 칩이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오류가 쉽게 발생하는 양자컴퓨터의 단점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실제 사례는 2025년 중 발표할 예정이다. IT 업계에서는 “양자컴퓨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꿈만 같던 오류 없는 양자 알고리즘을 실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177달러였던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발표 직후 장중 188달러까지 급등했다. 188달러는 지난 7월 16일(190달러)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월가는 엔비디아로 상징되는 AI 열풍 후발 주자를 찾아왔는데 ‘양자컴퓨터’가 새로운 테마로 부상한 셈이다.
자금은 계속 몰려드는 분위기다. 양자컴퓨팅 관련주를 담은 ‘디파이언스 퀀텀 ETF(QTUM)’에 2024년 12월 들어 2억5000만달러가 쏟아졌다. 2018년 상장 이후 가장 많은 월간 자금 유입액이다. 이 같은 순매수세에 힘입어 2024년 12월 들어 24일까지 17.2%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은 “QTUM은 출시 후 주목받지 못하던 ETF였다”며 “구글이 양자컴퓨터 칩 ‘윌로우’를 장착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자금 유입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아타나시오스 프사로파기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분석가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양자컴퓨팅은 2024년 AI처럼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양자컴퓨팅 관련 주식이 다른 ETF에는 많이 포함돼 있지 않아 QTUM이 사실상 유일한 플레이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양자컴퓨팅 관련 ETF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양자컴퓨팅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KOSEF 미국 양자컴퓨팅’을 상장했다. 아이온큐를 비롯한 양자컴퓨팅 관련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ETF 시장에 양자컴퓨팅 산업을 겨냥한 ETF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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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를 이해하는 3가지 키워드
중첩과 얽힘, 그리고 오류 정정
“물체의 초기 상태(위치와 속도)를 알면 미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세상은 미리 결정된 법칙(질량 보존, 만유인력 등)에 따라 움직이며, 측정의 정확성은 오직 기술적 한계에 의해서만 제약된다.”
거시 세계를 설명해온 고전물리학의 핵심 논리다. 하지만 원자 같은 아주 작은 입자를 다루는 미시 세계로 시선을 옮겨보자.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 안 되는 현상이 펼쳐진다. 일단 입자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동시 측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입자는 여러 상태로 존재하기도, 입자 간 강한 연결 관계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야말로 무질서한 세계다. 양자역학은 이를 정리한 이론이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운 개념이다. 그럼에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응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양자역학적 특징을 활용해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가 대표적이다. 양자컴퓨터 작동 원리를 알기 위해 양자역학의 핵심 키워드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첫 번째 키워드는 ① 중첩(Superposition)이다.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동전을 예로 들어보자. 고전물리학이 적용된 거시 세계에서 동전은 앞면 혹은 뒷면 중 하나로 결정된다. 앞면인 동시에 뒷면인 상태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동전을 양자역학 세계로 옮기면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동전이 빙글빙글 돌며 앞면인 동시에 뒷면으로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이를 측정하려 손을 대는 순간 중첩 상태는 붕괴돼 동전은 앞면 혹은 뒷면 중 하나의 값을 갖는다. 방해만 없다면 양자역학 속 세상은 중첩이 ‘디폴트(필수)’라는 의미다.
중첩을 활용하면 컴퓨터의 병렬 연산이 가능하다.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의 상태만 갖는 비트 단위로 구성됐다. 이용자 명령을 받으면 두 가지 숫자를 순차적으로 조합해 계산한다. 최근 멀티코어 등 기술 발전으로 일부 병렬 연산 형태를 갖췄지만 태생적으로 직렬 연산 방식이다.
‘A지역에서 B지역으로 가는 100가지 방법 중 가장 빠른 길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가정하자. 기존 컴퓨터는 숫자를 하나하나 넣으며 연산해 정답을 찾는다. 성능에 따라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큐비트 단위인 양자컴퓨터에선 순식간에 끝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적으로 중첩된, 0이면서 동시에 1인 상태다. 단 7개의 큐비트만 갖춘 양자컴퓨터도 2의 7승(乘)가지 연산을 동시 처리할 수 있다. 즉, 문제가 어려워지고 필요한 연산량이 늘어날수록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 대비 우월한 성능을 보인다.
줄리안 켈리 구글 퀀텀 AI팀 책임자가 ‘양자오류 정정(QEC)’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구글 퀀텀 AI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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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키워드는 ②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얽힘은 두 개 이상 입자가 강하게 연결돼 하나의 입자 상태가 정해지면 다른 입자 상태도 즉시 결정되는 현상이다. 얽힘 상태인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다. 이론적으로는 지구에서 달까지 떨어진 거리,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
중첩과 마찬가지로 얽힘도 양자컴퓨터에 적용된 대표적인 양자역학 현상이다. 중첩이 컴퓨터의 병렬 연산을 가능하게 했다면 얽힘은 효율적인 정답 도출을 돕는 식이다.
컴퓨터에 논리 게이트(NOT, AND, OR)가 있듯 양자컴퓨터에도 양자 게이트(단일·다중 게이트)가 있어 얽힘을 제어한다. 게이트는 말 그대로 큐비트 상태를 변환시키는 일종의 알고리즘이다. 예를 들어 다중 게이트 중 하나인 CNOT 게이트(Controlled-NOT 게이트)를 쓰면 하나의 큐비트가 1일 때 다른 큐비트 상태를 0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 얽힘을 제어하고 활용해 원하는 값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얽힘은 그야말로 민감하고 예민한 현상이다. 늘 오류 발생 가능성을 지닌다. 얽힘 정도가 조금만 느슨해도 예상과 다른 결괏값이 나올 수 있다. 일명 ③ 양자오류(Quantum Error)다. 이는 양자컴퓨터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특히 큐비트가 늘어날수록 양자오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어 해결 불가능한 요소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구글 등 빅테크는 ‘양자오류 정정(Quantum Error Correction·QEC)’ 기술을 개발하며 해법을 찾아왔다. 구글은 2023년 2월 네이처지에 QEC 기술 시연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큐비트 일부를 처음부터 QEC 용도로 할당하면 큐비트 개수가 늘수록 오히려 오류 발생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종의 ‘인해전술’이다. 2024년 12월 구글은 ‘윌로우’를 발표하며 이론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QEC 기술을 활용했더니 큐비트가 늘수록 오류가 줄었고, 이를 기반으로 105큐비트를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그늘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기존 보안 기술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커들이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비트코인 암호를 해독해 훔쳐 갈 가능성이 있다. 미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는 2022년 이런 해킹이 현실화할 경우 가상화폐를 비롯한 금융 시장에서 3조달러(약 4354조원) 이상 손실이 발생하고 심각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만큼 피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이런 이유로 구글이 ‘윌로우’를 발표했을 때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허드슨연구소의 아서 허먼은 “누군가 해킹 개발 능력을 갖추고 가상화폐에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폭발을 기다리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봤다. 보안 스타트업 큐시큐어의 스킵 산제리는 “은행들은 관련 규정과 방어 메커니즘, 고객 대응 능력 등이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미 서부 시대와 같다”면서 “비트코인 지갑에서 도난당하더라도 환불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보안과 신뢰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암호 해독이 순식간에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가상화폐에 쓰이는 암호 알고리즘을 깨려면 400만큐비트가 필요하고 적어도 10년이 걸릴 것”이라 밝혔다고 CNBC가 보도했다.
금색 전선이 주렁주렁 달려 마치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초전도 방식 양자컴퓨터에 쓰이는 극저온 냉각기다. 양자컴퓨터 칩이 중간에 들어가는 형태다. (구글 퀀텀 AI 제공) |
양자컴퓨터 산업도 쑥
美·中 시장 견인…韓 여전히 미흡
양자컴퓨터 개념 자체가 ‘최신 버전’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양자역학 기술을 적용한 양자컴퓨터 개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왔다. 그러나 기술적인 한계로 상용화 단계까지 접어들진 못했다. 본격적인 상용 양자컴퓨터가 등장한 시기는 2010년이다.
디웨이브시스템즈가 최초의 상용 양자컴퓨터 ‘디웨이브 원’을 선보였다. 이어 2016년 IBM이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선보였고, 2019년 구글이 뛰어들면서 양자컴퓨터 개발·상용화가 급물살을 탔다. 2024년 구글이 첫 성과로 양자 칩 ‘윌로우’를 공개하며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했다.
2020년대 들어 공공자금과 민간 투자 증가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면서 산업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양자 기술 민간 투자액은 2020년 7억4500만달러에서 2021년 23억달러로 급등했다. 2021년 이후 투자 금액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면서 소폭 감소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평균 22억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성능 PC 시장 조사기관인 미국 하이페리온리서치는 2024년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 규모가 10억달러에 도달했고, 2026년에는 15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양자컴퓨터 산업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장치를 비롯한 외형을 만드는 하드웨어(HW) 제조, 양자컴퓨터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 등을 만드는 소프트웨어(SW) 개발, 양자컴퓨터를 판매하는 서비스 산업이다. 미국 PC 시장 분석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전 세계 양자컴퓨터 공급업체는 208개다. 이 중 90개는 하드웨어 제조사, 68개는 소프트웨어 공급사, 50개는 서비스 제공사다.
하드웨어 제조업체는 양자컴퓨터 핵심 요소인 큐비트, 지원 시스템, 제어 전자장치 등을 만든다. 구글, 아이온큐, IBM, 마이크로소프트, 디웨이브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 중 구글과 MS 등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모두 담당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는 크게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로 분류된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는 양자컴퓨터를 위한 논리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파일러(프로그래밍 언어 번역 프로그램), 오류 수정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즉, 양자컴퓨터 구동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한다. 애플리케이션 공급업체는, 양자컴퓨터 기능을 응용한 금융·제약 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 대표 주자로는 양자컴퓨터 OS(운영체제) 개발사 CQC, 양자 제어 엔지니어링 프로그램 제공사 Q-CTRL, 양자 애플리케이션 제조사 자파타컴퓨팅, QCware 등이 있다.
서비스는 제공 방식에 따라 ‘온프레미스’와 ‘클라우드’로 나뉜다. 온프레미스 방식은 고객이 직접 컴퓨터를 구매한 뒤, 자체 시설에 설치하는 방법이다. 클라우드는 양자컴퓨터 서비스를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구독권’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아마존 웹서비스(AWS), MS Azure 등 기존 클라우드 컴퓨터 서비스업체들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자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구글·IBM·아마존과 같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시장을 키우는 중이다. 중국은 국가기관이 예산을 활용해 개발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2018년부터 양자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옴디아 조사 결과 중국 양자 기술 공공 투자 추정 가치는 150억달러에 달한다. 유럽과 일본 등 후발 주자들도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한국 역시 2023년 ‘양자컴퓨터 기술 원년’을 선언하고 양자컴퓨터 산업 투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투자 금액, 기술 수준, 산업 규모 등에서 현저히 뒤떨어졌다. IT와 반도체 등 양자컴퓨터 관련 산업이 발달했지만 잘 연계시키지 못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간한 ‘2023 양자정보기술 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2023년 양자 기술 예산은 953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투자가 빈약하다 보니 기술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글로벌 양자 기술 수준을 조사한 결과,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2.3으로 초라하다. 중국(35), 독일(28.6), 일본(24.5)과 비교해도 한참 부족하다. IT 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6.9)도 넘지 못했다.
국내 양자 기술 연구는 대학 연구소 수준에서 진행된다. 관련 기업 대다수가 규모가 영세한 중소기업이거나 스타트업이다. 자본이 돌지 않고, 기술 발전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산업은 성장을 멈췄다.
다만, 위기를 감지한 한국 정부가 양자 투자에 적극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며 분위기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정부는 민간 기업과 힘을 합쳐 2035년까지 양자 과학 기술 분야에 3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3조원 가운데 정부가 2조4000억원을 댄다. 기업은 2027년까지 6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8년 이후에는 기술 발전 속도와 경영 환경을 반영해 투자 규모를 늘릴 예정이다. 한국 기술 수준을 세계 최선도국인 미국의 8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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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온큐의 이온트랩 방식 양자컴퓨터는 이온을 전자기장으로 묶어두는 형태다. (아이온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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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초전도 vs 이온트랩 방식
투자자 사이에서도 양자컴퓨터는 최대 화두다. 관련 ETF는 출시와 동시에 완판될 정도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내놓은 양자컴퓨팅 ETF ‘KOSEF 미국양자컴퓨팅’은 상장 첫날 5분 만에 초기 물량 75만주가 모두 소진됐다.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시점, 개발에 뛰어든 기업 간 차이점을 정리했다.
양자컴퓨터 개발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뉜다. 먼저 구글과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굵직한 빅테크가 집중하는 ① 초전도 방식(Superconducting Qubit)이다. 전기 회로 형태로 큐비트를 구현한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회로를 초전도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초전도는 금속 등을 극저온 환경(-273.15℃)으로 냉각하면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인 금속에선 전자가 전기 저항을 받으며 충돌, 전자의 양자 성질이 깨지지만 초전도 상태에선 전기 저항이 없어 전자의 양자 성질이 잘 깨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큐비트 칩을 대형 냉각기 안에 집어넣는 모양새로 운용된다.
초전도 방식은 장단점이 극명하다. 일단 확장 가능성(Scalability)이 높다. 어찌 됐건 회로로 이뤄진 칩을 만들고, 이를 냉각기에 넣는 방식인 만큼 기존 반도체 공정 활용이 가능해서다. 또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는 만큼 게이트 조작에 필요한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다만 대형 냉각기가 필요해 소형화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 상대적으로 외부 잡음 노출과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구글과 IBM 등이 QEC 기술에 힘을 쏟는 이유다.
또 다른 방식은 ② 이온트랩(Trapped Ion)이다. 아이온큐와 허니웰인터내셔널(자회사 퀀티넘) 등이 주력하는 분야다. 이온트랩은 말 그대로 전자기장을 이용해 이온(전하를 띤 원자)을 진공 용기에 가두고 이를 큐비트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온트랩도 장단점이 분명하다. 일단 장점으로는 상대적으로 오류 발생 가능성이 적다. 전자기장으로 이온을 확실하게 묶어두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인 셈이다. 또 초전도 방식과 달리 상온에서 이용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이온트랩이 단기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다만 상대적으로 느린 조작 속도와 확장성이 걸림돌이다. 전자기장으로 잡아둘 수 있는 이온의 수가 제한되는 탓이다. 확장성 한계는 아이온큐 등 이온트랩 진영의 최대 고민거리다. 결국 투자자가 어느 쪽에 가치를 두고, 어떤 방식이 양자컴퓨터 시대 패권을 잡을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투자처가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투자자라면 양쪽 진영 모두와 협업 중인 엔비디아 등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엔비디아는 CUDA-Q 플랫폼을 앞세워 양자컴퓨터 개발을 돕는 양자 시뮬레이터와 양자 가속 슈퍼컴퓨팅 서비스 등을 제공 중이다. 기존 CUDA가 AI 개발자들이 AI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소프트웨어라면, CUDA-Q는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다. 양자컴퓨터를 어떻게 설계해야 노이즈(방해 등)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분석할 때 CUDA-Q를 활용하는 형태다. 2024년 11월 엔비디아는 자사 뉴스룸을 통해 구글과 CUDA-Q 협업 소식을 전했다. 비슷한 시점에 아이온큐와 엔비디아의 CUDA-Q 협업 소식도 터져 나왔다.
[명순영·최창원·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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