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배터리 1위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의 김동명 사장은 2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올해 사업 환경도 매우 어렵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도전적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경영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K온의 미국 생산 시설인 SK배터리아메리카 조지아주 공장./SK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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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제조사들의 전방 산업인 완성차의 판매는 지난해보다 위축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Korea Automobile and Mobility Association)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완성차 수출이 전년 대비 3.1% 감소한 166만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수 판매가 1.3% 증가하는데 그치면서, 전체 생산량은 전년보다 1.4% 줄어든 407만대로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배터리 제조사들의 실적 부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전기차 캐즘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KAMA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13% 늘었지만, 2022년에는 61.2%, 2023년 25.8%로 계속 증가 폭이 둔화됐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7.5% 늘어나는데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전기차 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권 인수팀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규정을 폐지할 것을 추진 중이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이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법안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1일(현지 시각)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9, 기아의 EV6와 EV9, 제네시스의 GV70 등 5개 전기차 모델을 IRA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보조금 지급 규정이 폐지되거나 수정되면 보조금 지급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검토 중인 10~20%의 보편관세 부과가 현실화 되면 자동차 수출은 타격을 받게 된다. 산업연구원은 보편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의 자동차와 2차전지 제조사들의 대미(對美) 수출이 각각 2.7%, 6.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전기차 제조사 BYD(비야디)는 최근 유럽, 동남아, 중남미 등에 잇따라 현지 공장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BYD는 환경부 인증이 끝나는대로 국내에서도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전기차·배터리 제조사로 오랜 기간 품질 경쟁력을 키워온 데다, 가격도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커 현대차·기아는 내수 시장을 사수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BYD는 최근 유럽과 중남미, 동남아 등에 잇따라 현지 공장을 지어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은 BYD 헝가리 공장. /BYD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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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배터리 제조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업황 부진과 여러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해 전략 변화에 나섰다.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등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대관 인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단행된 현대차그룹의 사장단 인사에서는 성김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전략 기획 담당 사장으로 임명됐고, 호세 무뇨스 북미권역본부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만든 친환경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도 당초 계획을 수정해 전기차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전기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 점을 감안해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하이브리드차 생산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배터리 제조사들도 신규 투자 대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내실을 강화해 부진한 실적을 만회할 계획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전기차 시장은 당분간 캐즘이 지속돼 2026년 이후는 돼야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의미 있는 수익 창출이 매우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단기적인 비용 절감 등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훈 기자(caesar8199@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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