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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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은 2015년에 한번 시원하게 망했다. 조선업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데 일감 없을 때를 제대로 대비 못했다. 안쪽은 저가 수주 경쟁과 방만 경영으로 썩어 있었고, 대안으로 진행했던 플랜트 사업도 당시엔 잘 안 됐다. 무리하게 수조원을 갖다 부어 바다에서 기름 뽑는 기계 만들어놨더니 유가가 폭락했다. 대형 악재가 터지면 늘 약자들부터 박살 난다. 일감부터 회삿돈까지 싹 말라버린 조선소들은 작은 규모순으로 폐업했다. 중산층의 꿈을 꾸며 거제로 몰려들었던 노동자들은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중국에 추월당할 듯했던 조선업은 2022년 기점으로 반등했다. 엄격해진 환경 규제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어났다. LNG(액화천연가스) 선박 건조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최고다. 근데 언론들이 수주 잭팟이라며 신나게 깃발 흔드는 반면 하청 노동자들은 이대론 못 산다며 도크를 점거하고 농성했다. 망했을 땐 주저 없이 사람 잘라대고 월급 깎아대더니, 돈 좀 잘 벌어도 임금이며 대우를 돌려놓지 않는다. 이 마당에 과연 조선소가 한국인 노동자에게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아니오”다.
대기업은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대신 손쉬운 선택을 했다. 한국인 기술자를 육성하는 대신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들여왔다. 기술교육원에서 용접을 배우는 교육생 숫자는 외국인이 훨씬 많았다. 얼마 없는 한국인은 그나마도 거제도민이 대부분이었고 타지에서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선소 동문엔 외국인 기숙사들이 늘어져 있어 이들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식당 문 여는 오전 7시 전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 태우는 모습. 서로 말이 안 통해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를 주고받던 모습. 몹시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밤늦게 영상 통화를 부여잡고 있던 모습. 주말엔 숙소 앞에서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매점 앞에서 족구 하며 노는 모습. 내가 보았던 이 모든 모습은, 한때 거제도로 몰려왔던 타지 선배들의 모습이었으리라.
교육원을 수료하고 취업 국면에 들어가니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감은 더 크게 느껴졌다. 괜찮은 협력업체도 회사 내 기숙사 방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서 자리가 없다’란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 월셋집과 최저임금 언저리 직장을 구했다.
이제 타지에서 남쪽 끝 거제 조선소까지 취업하러 오는 이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고작 27만명인 지역 주민만으론 조선업 수준의 거대한 산업을 유지할 순 없다. 자연히 외국인 노동자는 다 무너져가는 거제를 함께 떠받치게 될 팔자가 됐다. 원치 않게 막대한 책무를 짊어졌음에도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투명 인간이다. 한국의 법과 인식은 수도권 거주, 인 서울 대학, 고연봉 직장이 대표하는 주류 사회 위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서울 수도권에 살지 않으며 의사, 변호사, 공무원, 대기업 같은 일자리로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주류 사회의 이야기를 외쳐본들 들어 줄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한국판 수드라’ 계급이다.
기업이야 당장은 노났다. 당분간은 싸고 고분고분한 노동력 취급하며 부려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단체로 정당하고 공평한 대우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땐 어쩔 셈인지 모르겠다. 힘들 때 하청 노동자들 패대기쳤듯 또 마구잡이로 자를 건가? 그때 가선 더 싼 노동력을 수입할 국가조차 남아 있지 않을 텐데 마땅한 대책은 있는가?
숙제는 기업뿐만 아니라 거제에도 남아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귀국하지 않고 ‘피부색 다른 한국인’으로 살아가길 택했을 때, 이들을 동료 시민으로서 어떻게 포용하고 함께 지낼 준비가 됐는가. 지방 인구 구조는 점차 늙은 토착민과 젊은 이주민으로 재편될 테고 둘 간의 갈등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 같은 문제가 수도 없이 터져 나올 터. 지방 정부와 지역 사회는 이 예정된 대립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대비책이 없거나 부실하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장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 함께 ‘색’ 다른 한국인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자. 한국이 그저 어쩔 수 없이 돈 벌러 온 타지가 아닌,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장소로 남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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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 용접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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