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이 양아무개(37)씨 납골당에 놓은 가족사진. 양씨 사망 이후 세상에 나온 둘째 아이는 아빠를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유족 제공 |
“우리 가족사진 어때? 예쁘지. 우리 넷 가족 사진 만들려고 고생 좀 했다. 대단하지? 우리 애들 항상 지켜주고 있지? 스트레스받지 말고. 미안해는 해라. 이렇게 이쁜 애들 두고 먼저 간 거는…그래도 너무 보고 싶다.”
한 줄 한 줄 눌러 쓴 쪽지가 붙었다. 활기찬 두 딸들의 사진도 ‘우리 집 붕어빵들’이란 설명과 함께 붙어 있다.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과 서로 볼 수 없는 얼굴이 양아무개(37)씨의 납골당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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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전남 광양 앞바다에서 대구 육군부대 군무원 양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으로는 6살 어린 딸과 만삭 아내가 있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가 3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동안 유족은 아직 양씨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양씨는 7년간 장교로 근무하다 2018년 군무원 시험에 합격해, 2019년부터 지역 부대에서 예비군 동원 업무를 맡았다. 양씨는 2021년 예비군 동원과 관련된 새로운 업무를 맡은 뒤 압박감을 호소했다. 2022년 3월 코로나19 감염으로 3주간 격리됐다가 복귀했는데, 그 사이에 과도하게 업무량이 늘어 있었다. 격리를 마치고 복귀하면 반드시 ‘정신 건강 평가’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런 절차는 생략됐다. 건강이 안 좋아진 양씨는 그해 4월부터 육아휴직을 했는데 업무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휴직기간에도 상사의 업무지시가 이어졌다. 양씨는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양씨의 진단서에는 ‘중증도 우울에피소드’ ‘강박성 사고 또는 되새김’ 등이 적혀있다. 결국 “부대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오겠다”는 말을 가족에게 남기고 집을 떠난 날 주검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군은 처음엔 양씨의 죽음을 ‘단순 변사’라고 판단했다. 우울증과 양씨 죽음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고 본 것이다. 유족은 제대로 된 수사를 군에 요구했고 육군수사단은 양씨의 업무와 죽음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놨다. 2022년 10월 육군수사대는 양씨의 △코로나19 확진 전과 후의 심경변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관계 △격리 기간 중 업무 진행 여부 △심리부검 결과 보고서 등을 토대로 “코로나19 확진 후 장기간 격리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업무와 육아를 해결해나가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 부서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눈치를 보았을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어 우울장애 등 공무상 질환이 발병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심리부검서 역시 “출근 이후 업무량에 대한 급격한 스트레스 경험을 한 것 자체가 중요한 사건으로 보인다”며 “주변 동료들은 일반적인 업무 정도라고 했지만, 상당한 격리 기간 미뤄지거나 당면한 업무량은 당일 출근한 자살자의 인지적 기능 수준에서 감당하기 힘든 현실로 다가왔고 이로 인한 극도의 불안과 절망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어 “육아휴직 과정에서 주변인의 반응과 대처에 대한 인식된 스트레스도 기여 사건으로 보인다”며 “육아휴직으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식이 강하게 존재한 것으로 보이며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될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짚었다.
군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유족은 순직 신청을 했지만 인사혁신처는 “고인의 사망과 공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공무원 재해보상심의회 판단에 따라 지난해 5월 불승인 통보를 했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공무원 재해보상법 51조에 따라 공무원 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고인의 업무수행 내역 등에서 과중한 업무가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지난 3월 기각했다. 양씨의 부인 이아무개(32)씨는 “정말 힘들게 오랜 시간 기다려서 군의 수사 결과를 기다렸는데, 그 결론과 또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나라에서 지정한 기관에서 심리부검도 하고, 군에서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판단도 받았는데 순직 인정도 하지 않는 것은 남편을 두번, 세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유족은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 19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순직유족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청구’ 소송 변론기일에서 인사혁신처는 '객관적으로 심리 부담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진료 기록 감정을 재신청했다. 군 수사 단계에서 이미 진행된 심리 부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인사혁신처는 국군재정관리단 쪽에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국군재정관리단은 지난 11월 “군무원의 순직유족급여 지급은 공무원 연금공단의 소관으로 해당 기관에 문의 바란다”고 회신했다. 실제로 국군재정관리단은 군무원 순직 처리나 연금 지급 업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12월 국군재정관리단 소속 퇴직급여과는 돌연 2차 회신을 통해 ‘조사 결과 부대 쪽의 과실이 없다’며 군 수사 결과를 부인하는 내용의 답변서를 법원에 보냈다. 유족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이 사건을 수사한 군 수사기관도 아닌 국군재정관리단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소송에 회신을 한 것인지, 법무실도 거치지 않은 서류가 어떻게 발송된 것인지 모르겠다”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감사와 설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허위 공문서 작성에 대한 형사 고소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군재정관리단 법무실은 이와 관련한 한겨레의 질의에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새해가 밝았지만 유족의 억울한 시간은 그대로 멈춰져 있다.
“남겨진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있어요. 아이들이 아빠에 관해 물을 때, 함께 현충원에 가서 아빠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이라고 설명해주는 것. 그게 제 새해 소망입니다.”
납골당에는 남편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네 명이 한복을 입고 있는 가족사진이 놓여 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가장을 향한 가족의 그리움도 커져만 간다. 이씨는 “이미 수사를 통해 나온 내용들을 토대로,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에 열린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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