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6 (월)

[여홍일의 감성, 클래식美학] KBS교향악단의 새로운 도전… 잉키넨 시대의 끝과 새로운 시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MHN스포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총 26회의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난달 24일(화) 저녁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끝으로 KBS교향악단에서의 공식 임기를 마무리했다.

전임 요엘 레비 이후 KBS교향악단의 앙상블을 안정화하고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만큼, 그의 뒤를 이을 새로운 상임지휘자에겐 오케스트라의 연주 수준을 더 높이는 과제뿐 아니라,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 등 국제적으로 존재감 있는 지휘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지휘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기대와 책임이 동시에 주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일주일 전 있었던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보다 정제되고 밝은 소리를 들려준 것과 비교되어, 잉키넨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야 한다는 분위기 탓인지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는 평도 나왔다. 그럼에도 3년간 매해 연말마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책임지며 KBS교향악단의 중심축을 잡아준 잉키넨의 공로는 결코 작지 않았다.

사실 서울시향은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부지휘자 윌슨 응과 경기필 상임지휘자 김선욱이 '합창'을 지휘했고, 얍 판 츠베덴은 2023년과 2024년 두 해 연속 베토벤 9번을 지휘했는데, 잉키넨은 3년 연속 직접 KBS교향악단의 송년 '합창' 무대를 책임졌기에 상임지휘자로서의 상징성이 더 크게 부각됐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2023년 12월에 열렸던 KBS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은 디테일이 살아 있는 정통 템포의 연주를 선보여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 전날 롯데콘서트홀에서 얍 판 츠베덴이 빠른 템포로 현대적인 베토벤을 들려주었다면, KBS교향악단은 좀 더 전형적이며 정석적인 템포로 탄탄한 해석을 내놓아 두 오케스트라의 대비가 한층 도드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렇듯 2023년 연말 무대는 정통 교향악단으로서의 KBS교향악단을 새롭게 각인시켜 준 중요한 순간이었다.

필자가 인상 깊게 느꼈던 2023년 연말 공연에서는,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를 떠나지 못할 만큼 강렬한 여운이 남았다. 서울시향의 밝고 세련된 음색과 대비되는 KBS교향악단의 진중함, 중앙 공연장의 훌륭한 어쿠스틱 효과, 바리톤 최기돈의 소리 울림, 그리고 상임지휘자 잉키넨의 오랜만의 지휘로 완성된 '정통' 베토벤 9번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KBS교향악단의 깊이감 있는 연주였다.

그렇다면 2022년 12월 24일 KBS교향악단의 연말 '합창' 무대는 어땠을까. 이전부터 익숙했던 연말 베토벤 9번 공연들과 달리, 그날 무대에는 유난히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더블베이스 파트가 좌측에 배치되어 색다른 시각적 신선함을 주었고, 오랜만에 무대에 선 잉키넨과 단원들은 몸놀림이 더욱 가벼워 보였다. 마치 나사를 바짝 조인 듯 더욱 정교해진 연주의 결이 새롭게 다가왔다.

잉키넨의 3년간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합창석 전면 스크린에 그의 활동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필자도 동시에 그와 함께했던 무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3년 전 KBS교향악단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기치를 내걸며 등장했고, 첫해부터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 모음곡을 비롯한 핀란드 작품들을 정교하게 지휘하며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2022년 1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9대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는, 오스모 벤스케 못지않은 섬세함을 보여주어 "KBS교향악단이 되살아났다"는 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KBS교향악단에 대한 관객의 뜨거운 호응은, 전임 요엘 레비(2014~2019년 재임) 시절의 안정된 그러나 조금은 식상해진 모습을 넘어, 젊은 지휘자 잉키넨의 신선함과 핀란드 음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후 2년 차를 맞은 2023년에는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부터 라벨 피아노 협주곡,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 등 다양한 프랑스 음악까지 지휘해내며, 잉키넨이 핀란드 작곡가뿐만 아니라 폭넓은 범주의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역량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2024년 봄, 교향악축제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무대에 섰을 때는 스키 사고로 다리를 저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개막공연에 걸맞게 강인한 모습을 보이며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했다. 한층 높아진 연주력과 그가 보여준 위기 극복 능력은 잉키넨이 남은 임기 동안 KBS교향악단을 한층 성장시킬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결국 지난 3년 동안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약한 피에타리 잉키넨은, 해마다 한 해의 문을 닫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지휘해 오케스트라에 중심을 잡아준 지휘자였다. 그의 고별무대가 다소 무거운 색채를 띠었다는 평도 있지만, 그 기간 KBS교향악단이 보여준 앙상블의 향상, 정통 교향악단다운 디테일, 더불어 국내외 팬들에게 선사한 감동은 분명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제 남은 과제는, 새로운 상임지휘자를 통해 그들이 쌓아온 성과와 정통성을 이어받고, 더욱 도약한 연주력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향과 맞먹는 국제적 지휘자 영입이 필수 과제로 떠오른 만큼, 앞으로 KBS교향악단의 행보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기대가 모아진다.

글: = 음악칼럼니스트 여홍일

사진 = KBS교향악단

공연 : 12월24일(화) 저녁 8시 SAC콘서트홀

<저작권자 Copyright ⓒ MHN스포츠 / MHN Sport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