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R 분석에만 6개월 이상 걸려…최종 조사보고서는 1년여가 다반사
지난 1월 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 감식과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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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항공기 사고는 유의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매해 발간하는 ‘안전진단 보고서(Safety Report 2024)’에 따르면 2023년은 사고율, 치명적인 사고 수, 총사망자 수 및 사망률 등의 지표에서 최근 5년 중 가장 안전한 해였다.
2023년 전 세계 항공 여객은 약 42억명으로 2022년(약 32억명)보다 30% 정도 증가했다. 비행 횟수 역시 약 3500만회로 2022년(약 3100만회)보다 13% 증가했다. 그런데도 사고 횟수와 사고율은 감소했다. 항공기 사고는 2019년 114건에서 2023년 66건으로 줄었다. 같은 시기 비행 횟수 100만건 당 사고율은 2.94%에서 1.87%로 급감했다.
항공기 안전이 개선되는 흐름은 2024년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까지 사망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사고는 두 건이었다. 7월 24일 네팔 사우리아항공 소속 여객기가 포카라로 향하던 중 추락해 18명이 숨졌고, 8월 9일 브라질 보에패스항공 소속 여객기 추락 사고에서 6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1월까지는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공항까지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는 길이 더 위험하다”는 통계가 다시 한번 입증될 것처럼 보였다.
잔인한 12월이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항공 J28243편이 지난해 12월 25일 카자흐스탄 상공에서 추락해 탑승자 67명 중 38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12월 29일, 한국인 승객 173명, 태국인 승객 2명, 승무원 6명 등 총 181명을 태우고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한국 무안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제주항공 여객기 7C2216편이 비상 착륙 중 활주로 밖에 설치돼 있던 방위각시설(Localizer·로컬라이저)과 충돌해 폭발했다. 사망자 179명, 생존자는 단 2명이었다. 2024년은 2019년 이후 항공 안전 역사상 최악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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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보다 항공기 사고 빈도는 분명 줄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례를 다 합쳐도 1년에 100건 안팎이다. 다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처럼 일단 사고가 나면 탑승객의 생존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운송수단 특성상 피해자의 국적 및 사고 지점이 여러 국가에 걸쳐서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이러한 특성들이 모여 사고 시 국내외 주목도를 높이고, 사고 원인을 둘러싼 성급한 예단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를 맹목적으로 쫓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 이는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진짜 문제를 가린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두고도 이와 같은 현상이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
ICAO에 따르면 항공기 안전관리도 시대에 따라 중점을 두는 부분이 변해왔다. 차례대로 기술적(Technical Era), 인적(Human Factor), 조직적(Organizational Era) 요인이 중요했던 시기를 지나 현재는 종합시스템(Total System Era)을 중점에 둔다. 그런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을 두고도 마치 해당 순서를 따라가듯 차례대로 의문이 제기됐다.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기체 결함이다. 이는 자체 결함보다 외부충격설에 무게가 실린다.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이 엔진 이상을 만들었고, 비상착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국토교통부는 “조종사가 (오전) 8시 59분에 조류 충돌에 따른 메이데이(조난)를 선언하고 복행(고 어라운드·착지하지 않고 고도를 높이는 것)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랜딩기어(비행기 바퀴 등 이·착륙을 돕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이날 해당 여객기는 바퀴 없이 동체착륙을 시도했다. 착륙 시 비행기 날개부에서 속도를 줄여주는 고양력 장치 플랩(flap)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조류 충돌과 착륙 시 필요한 장치들의 미작동 문제를 연결해 기체 ‘셧다운’설로도 확장했다. 사고 직전인 오전 8시 58분쯤 항공기 위치 추적 시스템(ADS-B) 데이터가 끊겼다는 것이 근거로 추가됐다.
다음은 인적 문제다. 제주항공 같은 저비용 항공사는 조종사와 정비사 수가 적고,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이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조직적 문제 역시 이와 유사하다. 저비용 항공사 특성상 보유한 항공기의 평균 기령(비행기 나이), 여객기 한 대당 운항시간이 모두 길다. 국토교통부 항공기술정보시스템을 보면 제주항공이 보유한 항공기 41대의 평균 기령은 14.4년이고, 여객기 1대당 운항시간은 하루평균 14시간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저비용 항공사 중 1등이다
마지막은 항공기의 이륙, 비행, 착륙과 관련한 모든 것을 따지는 종합시스템이다. 철새도래지가 인접한 무안공항의 위치, 공항 종사자 수와 직업적 능력, 참사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로컬라이저를 떠받친 콘크리트 둔덕 문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를 토대로 항공기 ‘비상착륙 사고’와 ‘참사’의 원인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관점도 등장했다. 둔덕이 없었다면 비상착륙은 해도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가정이다.
매일같이 제기되는 전 영역에 걸친 의문은 주로 언론과 국내외 전문가 발언을 통해 알려진다. 사고 당시를 촬영한 영상, 공항의 구조 등이 근거다. 1차 착륙 허가를 받은 오전 8시 54분부터 활주로 외벽과 충돌한 9시 3분까지의 정황이 궁금하다며 ‘최후의 9분’,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충돌 경고를 받은 8시 57분부터 기장이 메이데이를 말한 8시 59분 사이에 사고 원인이 있다며 ‘핵심 2분’ 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사고를 둘러싼 의문이 최종 보고서 결론과 다를 경우다. 이로 인해 이미 수많은 항공기 사고가 ‘미스터리’, ‘음모론’이란 이름으로 남았다.
애도하는 시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공식적인 조사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 사고조사관 11명과 미국 연방항공청(FAA) 관계자 1명,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소속 전문가 3명, 사고기 제작사인 미국 보잉사 관계자 4명이 포함된 합동조사단이 맡는다. 이들은 아직 참사 원인을 특정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상황을 담은 비행자료기록장치(FDR)는 전원장치와 자료저장장치를 연결하는 특수 커넥터가 분실돼 국내에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국토교통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NTSB 본부로 장치를 보내 분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지난 1월 2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서 한 시민이 사고 여객기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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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인은 밝혀지겠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당장 FDR의 완전한 해독에만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항공기 사고의 경우 최종 조사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1년여가 걸리는 경우는 다반사다. 국제민간항공협약(시카고 협약) 부속서-13은 ‘항공기 사고 및 사건 조사(Aircraft Accident and Incident Investigation)’를 다루고 있는데 사고조사는 사고가 발생한 국가가 개시하나 사고국 외에도 항공기 제조국과 제조사가 참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사조위에 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결론에 이르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2023년 1월 15일 한국인 2명을 포함해 총 72명이 숨진 네팔 항공기 추락 사건은 그해 12월 28일(현지시간)에야 항공기 추락 원인을 밝힌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브라질 보에패스항공 소속 여객기 추락 사고는 아직도 조사 중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후 이제 일주일여가 지났다. 아직 179명 희생자의 유해조차 유가족에게 완전히 인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미 수십가지의 원인 분석이 나왔다. 이를 통한 ‘범인 찾기’, ‘비난·혐오’ 등이 진행 중이다. 이를 지적해 화제가 된 항공 관련 종사자의 글이다. “수천명의 전·현직 기장들이 (사고가 난) 그 기종을 수천시간 몰아봤는데도 침묵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조용히 기다리는 걸 추천 드린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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