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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美친 증시]④ 박선영 동국대 교수 “고점 논쟁 무의미… 미 올해 안좋다면, 다른 곳은 더 안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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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서학개미, 특히 미국 증시 투자자에게 완벽한 한 해였다. 나스닥종합지수와 S&P500지수의 연간 상승률은 30% 안팎을 기록했다. 반면에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연초보다 각각 9.9%, 21.7% 하락한 채 장을 마쳤다. 요즘 주식 투자하는 개인 열에 아홉은 같은 질문을 한다. “2025년에도 미국 증시는 고공 행진을 이어갈까?” 낙관론이 지배적이지만, 스멀스멀 비관론도 나온다. 강세장과 약세장을 전망하는 양 측의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자의 굳건한 믿음은 결국 미국 경제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다. 미국은 선진국 중 고령화 진행 속도가 가장 느리고 확장적 재정정책이 수월한 기축통화국이다. 게다가 글로벌 인재가 앞다퉈 모여드는 가운데 에너지 자원도 풍부하다. 이런 환경에서 미 자본시장은 세계 각국의 유망 기업을 손쉽게 끌어들인다. “결국 대안은 미국 주식”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물론 불안 요인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과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의구심,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부채와 양극화 심화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경제는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올해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까. 미국 증시 순항의 전제 조건을 점검하고자 지난 12월 30일 서울 한 호텔에서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만났다.

1982년생인 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학부 시절 그의 지도교수다. 박 교수는 29세에 카이스트(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근무했으며, 자본시장연구원을 거쳐 현재 동국대 경제학과에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금융시장과 국제금융, 자본시장과 연기금이다.

박 교수는 “현재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경제 성과 측면에서 미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며 “인재·기업·기술이 몰려드는 미국의 멀티플(기업가치배수)이 높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높은 멀티플은 각국의 우수 기업과 유동성을 뉴욕 증시로 끌어모으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다만 박 교수는 “한국 증시는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은데, 개인이 종목 선정과 투자 시점까지 직접 결정하는 상황이라 염려스럽다”고 했다. 이런 투자 성향이 불안과 피로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조선비즈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2024년 12월 30일 서울 신천동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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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박 교수와 일문일답.

─미국 경제가 올해도 순항할 수 있을까.

“지금 미국 경제는 비현실적이다. 인구 3억3000만명에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8만달러가 넘는다. GDP 기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인데, 이런 거대한 경제가 지난해 2.8% 성장하고 실업률은 4.1%에 그쳤다. 지표만 보면 모든 게 완벽하다. 여기에 달러라는 기축통화가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강력한 통화를 활용해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순항할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전망은 조심스럽다. 다만 분명한 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경제 성과는 미국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중 생산과 고용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기대치를 웃도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1990년 미국 GDP는 주요 7개국(G7) 전체 GDP의 5분의 2를 차지했는데, 지금은 절반에 달한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미시시피주(州)의 평균 임금은 영국·캐나다·독일의 평균 임금보다 높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AI 거품론, 국가 부채 부담 등 리스크 요인이 언급된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중장기 리스크다. 심장마비 같은 급성질환을 우려하는 사람은 없다. 또 리스크를 상쇄할 요소도 있다. 예컨대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이자 군사 대국이고, 세계 최고 대학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전 세계 인재를 빨아들인다. 기초과학과 혁신기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선두를 달리는 원동력이다. 이런 환경을 토대로 성장한 미 자본시장은 우수한 기업을 쉽게 유치한다. 출산율은 1.66명으로 선진국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느리다.”

─잘 생긴 재벌 2세가 성격도 좋고 운동까지 잘하는 드라마 캐릭터를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경제학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자기강화적(self-reinforcing) 또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기대라는 말이다. 어떤 기대가 경제주체의 행동을 이끌고, 결국 그 기대감이 현실이 될 때 쓴다. 지금 자기실현적 기대가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이 미국 경제와 자본시장이다.”

조선비즈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전경. /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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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앞서 언급한 토대 덕에 인재도 기업도 기술도 미국으로 몰리지 않나. 당연히 미국 멀티플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많은 기업이 뉴욕 증시에서 IPO(기업공개) 하고 싶어 한다. 미 주식시장에 입성한 이들 기업의 높은 수익률은 더 많은 투자자를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만약 올해 미 증시가 안 좋다면, 다른 증시는 더 안 좋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에는 자기실현적 기대가 작동하지 않나.

“작동하긴 하는데, 미국과 정반대다. 우리나라엔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고, 은퇴 이후 복지 체계는 취약하다. 산업구조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소수 대기업이나 전문직 정도를 제외하곤 선진국 수준의 소득을 얻기 어렵다. 30대에 겨우 취업해 50대 중반에 은퇴해야 하는데, 주택 가격과 자녀 사교육비는 터무니없이 높다. 결국 한국 젊은이의 자기실현적 기대는 초고위험 자산 투자를 통한 ‘대박’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로 젊은 세대의 해외 투자, 가상자산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젊은 세대 입장에선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국내 증시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미국의 연간 투자 수익률은 7%, 미국 외 시장의 수익률은 4.9%다. 100년 누적치로 보면 미국에 투자한 이는 다른 나라에 투자한 사람보다 7배 이상 부자가 된다. 미 증시 고점 논쟁은 무의미해 보인다. 다른 나라 증시가 너무 부진해서 딱히 대안도 없다.”

─한·미 자본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은 똑똑하고 부지런하다. 자본시장에 참여한 개인도 마찬가지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 비중(거래량 기준)이 64%에 달한다. 미국·일본이 30%, 독일은 15% 정도다. 주식에 투자한 이들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다. 대출·주택 정책이 바뀔 때마다 공부해 대응한다. 쏠림도 심하다. 어떤 테마가 뜨면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주식을 사고파느라 바쁘다.”

조선비즈

일러스트=챗GPT 달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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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투자하는 것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게 나은 것 같은데.

“맞는 말이지만, 매일 이런 식이면 불안과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개인이 직접 투자 타이밍을 결정하거나 종목 선정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상을 살아가고 투자는 ‘401K’로 잘 알려진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간접 투자한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다. 가계 자산 중 금융자산 비중은 70% 이상이다. 미 정부 입장에선 기업 주가 관리가 곧 국민 노후 관리인 셈이니 자본시장 감독을 철저히 한다.”

─우리나라도 간접투자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인가.

“그 방향이 옳다고 본다. 한국도 고령화와 함께 퇴직연금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은 어려워도 투자 문화를 바꿔가야 한다. 생산적이어야 할 경제 주체가 자기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가 변동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너무 소모적이다.”

─믿고 맡기기엔 우리 자본시장과 기업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투자자 신뢰를 잃은 건 오랜 시간 지배주주 중심으로 움직여온 기업과 그런 시장을 방치한 금융당국의 업보(業報)다. 당국은 상장 자체가 목표였던 것처럼 상장 후엔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기업을 과감히 퇴출하고, 기업은 이윤을 주주에게 반드시 돌려주고 모든 의사결정을 주주 자본주의 관점에서 해야 한다. 말하고 보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한국에선 당연하지 않다는 게 안타깝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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