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 전면도입…지자체 따라 사업 역량 차이 엄청나
성공적 정착 위해선 도입 초기 중앙정부 역할 필수적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News1 |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2025년 고등교육 부문에서 핵심적 변화 중 하나는 라이즈 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for Education·RISE, 지역 혁신 교육 체계) 도입이다. 라이즈 체계 도입은 대학 혁신과 지원의 책임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지역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협력, 평생교육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그리고 지역 고등교육기관 간의 연계와 협력을 촉진해 지역 내 고등교육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야심 찬 정책이다.
필자는 라이즈 체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도입 초기 단계에서 중앙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라이즈 체계가 충분한 논의와 숙성 기간을 두고 도입되는 것이 아니어서 지자체에 따라 사업을 시행할 역량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이양 대학 지원 권한·책임 명확한 규정 없어
교육부는 지역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지자체 주도로 전환하면서 라이즈 체계 도입, 재정지원사업 시행 관련 지원 업무를 한국연구재단의 중앙라이즈센터에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3년 한국연구재단에 신설된 중앙라이즈센터는 사업 지원과 성과 관리의 주체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 역할과 권한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또한 중앙라이즈센터에는 충분한 인력과 행·재정적 지원이 확보돼 있지 않고, 라이즈 성과 관리 매뉴얼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대학 지원과 관련해 지자체에 이양하는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법령에 의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못하고, 중앙 라이즈 센터와 지역 라이즈 센터와의 관계 설정, 지자체가 수행하고 있는 라이즈 재정지원 사업에 대한 평가·조정 권한 등에 대한 중앙정부의 역할 역시 명확히 규정돼 있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이에 따라 지자체가 지방대학 지원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 이를 어떻게 평가,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중앙라이즈센터에 힘을 실어주고 구체적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할 교육부 담당부서(지역인재정책관)는 때마침 터진 '의정 분쟁'이라는 초대형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떠맡게 되면서, 정작 중요한 라이즈 체계의 정착을 위한 대책 마련에는 관심을 쏟기 어려운 상태가 돼 있다.
급하게 설립된 지역라이즈센터, 경험·전문성 부족 심각
한편 지자체 단위로 운영되는 지역라이즈센터들은 대부분 2023년 이후에 급하게 설립된 경우가 많아 관련 경험과 전문성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센터는 지자체 퇴직 국장 등이 센터장으로 임용되는 경우도 있어 관련 사업에 대한 이해와 수행 경험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자체별로 대학 지원 전담 부서와 지원 인력 규모도 제각각이고, 구성원들의 역량도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마다 추진하는 재정지원 방식과 내용의 질적 수준에 많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사업 목적 달성에 지장을 초래하는 주된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 거점 국립대학 등 특정한 대학 출신 네트워크가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특성상 지자체가 주도해 시행하는 재정 배분 과정에서 특히 후발 중소규모 대학들의 경우 평가와 선정 과정에서 학연, 지연 등 정실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상당한 편이다.
대학 간 협력 중요한데 주로 대학·기업 협력 초점
현재 운영되고 있는 17개 시도 지역라이즈센터를 살펴보면 시도 특성에 따라 지역 산업을 지원해 온 지자체 연구원(경북연구원, 충남연구원 등), 테크노파크, 인재평생교육진흥원 등 다양한 지자체 산하기관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동안 지역 산업 지원 육성을 해 왔던 기관들이 라이즈 재정지원사업을 주도하고 있어 현재 라이즈 체계는 대학 간 협력보다는 주로 대학과 기업 간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정작 지역 사회와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본질적 어려움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지역 대학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난이다. 이 문제는 지역 기업과의 협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지역 대학 간 협력과 역할 분담을 통해 건전한 고등교육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라이즈센터를 중심으로 공공 기초교양대학을 설립해 공유 교육과정, 공유 강사, 공유 시설을 지역대학 간 공유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시험해 볼 필요도 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소규모 대학은 전공 교과목 제공에 집중하고, 교양 기초과목은 지역에 설립된 공공 기초교양대학이 맡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 선정된 글로컬 대학 30 사업단들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사업 간 연계 조정을 강화해 나갈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지자체는 현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산 배분·평가 통해 지자체 견제·통제 장치 마련 시급
라이즈 체계 도입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다. 따라서 시행착오가 발생할 가능성이 특히 큰 라이즈 체계 도입 초기 단계에서는 지자체의 자율과 중앙정부의 조정, 평가 역할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지자체 간 역량 차이가 매우 큰 상황에서 지난 수십년간 관련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중앙정부의 평가와 모니터링, 이에 기반한 지원과 조정 역할은 필수적이다.
중앙라이즈센터의 권한과 법적 위상을 지금이라도 명확하게 정리해서 예산 배분과 평가를 통해 지역라이즈센터를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집행 과정 모니터링과 성과 평가 체계 마련이 시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과가 우수한 지자체에는 추가적인 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역량이 부족한 지자체에는 개선을 위해 필요한 컨설팅과 연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지역 라이즈 센터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거 제도 아래 정치적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는 지자체장의 영향으로 인해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권 교체에도 정책 지속성 보장할 수 있는 장치 필요
아울러 선거에 이해관계가 있는 광역 지자체장으로서는 하기 힘든 사업, 예를 들어 대구에 소재한 경북대와 같은 거점 대학이 인근 경북 지역의 중소규모 대학이나 기업에 도움을 주며 상생할 수 있는, 보다 유연한 사업 시행 구조를 만들어 나갈 필요도 있다.
라이즈 체계와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에 따른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중앙정부(교육부)와 지방정부(지자체) 간의 명확한 역할 분담을 법령에 규정하는 것은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는 새로 도입된 라이즈 체계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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