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7 (화)

[탄소중립과 혁신III] (20)탄소를 기회로 전환할 준비가 되었는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남도영 기자]

테크M

/사진=테크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원의 채굴-생산-소비-폐기에 이르는 단방향의 선형경제모델은 매년 3%의 글로벌 경제성장을 이끌며 전 세계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선형경제는 경제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며 그 산물 중 하나로 탄소 기반의 산업 문명을 찬란하게 건설해냈다. 그러나 탄소에 기반 한 경제성장은 전 세계에 부를 안겨줌과 동시에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파괴 등과 같은 전 지구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키며 지구 시스템 역학을 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탄소를 기회로, 경제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순환경제'

주요국은 수백 년을 이어온 선형경제가 지구 시스템 변화에 중대한 변인으로 작용했음을 인식하면서 그간의 경제성장방식을 새로운 차원의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현재의 환경위기를 촉발한 원인이 선형경제에 있음을 확인하고, 환경의제 해법으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전환의 중심에 순환경제 모델이 있다. 국제사회의 공통된 합의는 부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순환경제란 신규 투입되는 자원을 최소화하면서 이미 투입된 자원을 재활용 또는 재사용 등과 같은 방식으로 순환고리 안에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하여 폐기물 양을 최소화 하는 경제모델로 이해된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하여 미래 성장 동력 확보, 부가가치 창출, 사회경제적 기회 확대 등이 순환경제 주요 요소로 포함되고 있는 추세다.

순환경제는 선형경제의 핵심이었던 탄소배출과 경제성장의 등가관계를 해소하려는 시도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탄소와 경제성장을 탈동조화하려는 방안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탈동조화라기보다 변화된 방식의 탄소활동과 경제성장의 동조화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은 배출된 탄소를 적절한 장소로 이동시키거나 다시 가둠으로써 탄소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EU에서 발표된 '영구적 탄소제거, 탄소농업과 제품 내 탄소 저장을 위한 유럽연합의 인증 프레임워크 구축에 관한 규칙(The Carbon Removals and Carbon Farming Regulation)'이 대표적인 사례다.

EU CRCF 규칙의 시사점

2024년 12월 26일 발효된 CRCF 규칙은 탄소 자원이 초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 규칙은 자원의 재사용, 재활용, 대체적 접근 등을 통해 탄소 자원의 순환 가능성을 높이고, EU 차원의 기후중립목표를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CRCF의 핵심은 자발적 인증체계를 위한 품질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는 데 있으며, 이는 법적 의무를 넘어 기업과 개인이 추가적인 감축 활동에 참여하도록 장려해 자발적 탄소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규칙이 인정하는 인증범위는 '영구적 탄소제거(대기 중에 존재하거나 생물에서 발생되는 탄소를 포집하여 장기간 저장하는 활동), 탄소농업(산림 또는 토양에 탄소를 격리·저장하는 최소 5년 이상 지속되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활동)과 제품 내 탄소 저장(최소 35년 이상 사용되는 제품에 탄소를 저장하는 활동)'인데, 이는 비교적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부문에서의 감축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특정 고배출 부문에 적용되는 의무적 탄소 감축 메커니즘인 EU 배출권거래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탄소 제거와 감축 효과의 측정 보고를 통한 정량화(Quantification) 기존 법률 등에 따른 감축이 아닌 추가적(Additionality) 활동임을 입증 장기적 저장, 탄소 방출 위험의 모니터링과 탄소방출 관리를 위한 책임 메커니즘 도입(Storage, monitoring and liability)과 기후변화 완화·적응에의 기여,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포함한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예방, 토양건강을 고려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복원·보호 등과 같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준은 그간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발급된 인증서의 상이한 기준에서 촉발된 신뢰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이 규칙이 정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 등과 인증방법론 개발·보완에 대한 사항은 향후 위임규정(delegated acts)에 따라 정해질 예정임에 따라 정작 인증에 필요한 세부절차와 방법은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CRCF 규칙이 순환경제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CRCF 규칙에 따른 인증이 EU의 NDC와 자발적 탄소 시장에서 이중계산 될 가능성이 높고, 탄소 저장은 최소 100년 이상 지속되어야 기후변화 완화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음에도 CRCF 규칙의 활동 기준으로 제시된 기간이 5년 또는 35년으로 지나치게 낮으며, 탄소 제거 등이 정확히 계산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체계 마련해야

이와 같은 우려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24년 11월에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국제 탄소시장 설립 기반이 마련되었고, 국내에서도 자발적 탄소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발적 탄소 시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시장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확하고 투명한 인증체계 설계와 관련 정책 마련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뢰할 수 없는 체계는 시장 참여자의 의욕을 저하하고, 자발적 탄소 시장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환경적·경제적 효과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순환경제 시대에서 탄소가 새로운 재화로 전환되어 비즈니스 모델 창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확한 인증체계는 또 다른 환경적 외부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탄소 감축, 저장 등의 활동을 통해 탄소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환경·경제·사회적 지속가능성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순환경제 또한 탄소 기반의 산업문명을 쌓아올린 선형경제와 같이 환경적 외부효과를 양산하는 실패한 전략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2025년, 새로운 한해와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미래가 질 높은 환경과 지속 가능한 경제의 균형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순환경제 패러다임 안에서 안전하게 순항할 수 있길 바란다.

글=한민지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한민지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법학박사)

테크M

한민지 박사는 환경법 및 동물법 분야 전문가다. 독일 자를란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가녹색기술연구소에서 수년간 녹색기술과 기후변화 대응 입법 정책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는 한국법제연구원 미래법제사업본부 글로벌법제전략팀에서 법제연구를 수행하는 한편, 단국대학교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겸임교수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저작권자 Copyright ⓒ 테크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