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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위기의 미국 민주주의···트럼프 2.0 견딜 수 있나[다시 만난 트럼프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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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가 확정된 2024년 11월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게재된 만평. 2001년 만평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앤 텔네이스는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끄고 짐을 싼 채 떠나는 모습을 그렸다. 만평의 제목은 “다 끝났어(The End).”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때 ‘민주주의의 등대’로 불린 미국에서 집권 1기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숱한 민주주의 위기설을 낳았다. 막말과 성 추문, 두 번의 탄핵소추, 2020년 대선 불복 등 여느 권위주의 권력자와 마찬가지로 민주적 규범을 무시하고 정치 양극화를 부추겼다. 2021년 1·6 의사당 폭동 사태로 정점을 찍으며 민주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었음에도 트럼프 당선인은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오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 집권 1기(2017~2021년)는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한 명의 권력자가 민주주의 제도를 어떻게, 얼마나 훼손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의 집약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 경력이라곤 전혀 없던 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쇼 진행자 출신 트럼프 당선인은 제45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상대 정당을 범죄집단으로 몰아세우는 데 주력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들에 대해선 폭력을 부추기고 언론을 향해선 협박을 이어갔다. 민주적 규범이 번번이 무너져내린 당시 미국 현실을 두고 <폭정>(2017),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2018), <위험한 민주주의>(2018) 등 민주주의 위기를 진단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분석기관이 매년 내놓는 ‘민주주의 지수’에도 트럼프 당선인의 영향이 반영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인텔리전스 유닛(EIU)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 대선에서 승리한 2016년 처음으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떨어졌다. ‘완전한 민주주의’ 수준에서 한 단계 낮아진 것이다. 이 상태는 이후로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 역시 트럼프 집권 1기가 출범한 후 미국은 민주주의가 침식되면서 “실질적 독재화”를 겪었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 불복해 민주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했던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을 두고 미국에선 민주주의의 자정 기능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당선인을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직격하는 전략도 폈지만 결국 백악관을 내줬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공동 저자인 다니엘 지블랫은 “미국은 이미 지난 10년간 민주주의 쇠퇴 과정에 있었다”며 “이번 대선은 쇠퇴를 재촉할 뿐”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실제 1·6 의사당 폭동에 가담한 이들은 빠르게 사면할 것이라고 밝히고 ‘반트럼프’ 인사에 대한 보복 수사 가능성을 시사하며 두 번째 임기를 준비 중이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엔 소송을 내며 ‘언론 압박’은 이미 시작했다. 입법·행정·사법부 모두 8년 전보다 트럼프 당선인에게 더 우호적인 쪽으로 재편된 점 역시 그가 집권 1기 때보다 민주주의를 훼손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과거 트럼프 당선인의 숱한 반민주적 행위에 법원과 의회가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며, 이는 민주주의를 유지할 장치인 ‘견제와 균형’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도 짚었다. 민주당 소속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네티컷)은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을 앞두고 행한 ‘언론 압박’ 등 사례를 나열하면서 “트럼프 당선인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마비시키려는 계획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서부터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분위기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부터 공개적으로 반복해온 혐오 발언 탓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목소리를 낼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월마트와 디즈니 등 대기업까지 그동안 유지해온 다양성 정책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불러온 ‘민주주의 위협’은 진공 상태에서 나타나지 않았으며,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때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과 비슷한 유형의 지도자가 권력을 쥔 헝가리, 베네수엘라 등과 달리 미국은 훨씬 튼튼한 헌법 체계와 연방정부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취약할지언정 안전장치 덕에 상대적으로 쉽게 좌초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포퓰리즘 연구자인 카스 무데 미 조지아대 교수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훨씬 더 강력해진 위치를 고려하면 트럼프 2.0은 1.0과 전혀 다를 것”이라면서도 “그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처럼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은 작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인이 헝가리인보다 더 민주적이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헝가리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라며 “폭정을 막기 위해 설립된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매우 복잡하고 엄격하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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