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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이슈 미술의 세계

    수천개 한지조각으로 빚은 ‘마음의 대지’…현대사회 불안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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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영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빛’ ‘집합’ 등 대표작 총망라
    대형 설치작품 4점도 선보여

    한국 보자기 문화서 영감받아
    한지로 감싼 삼각기둥 조각들
    빈틈없이 이어붙여 작품 완성
    “우리도 이처럼 화합 이루길”


    매일경제

    전광영 ‘Aggregation24-FE011’(2024).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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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한지로 감싼 크고 작은 스티로폼 삼각기둥 조각들이 거대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전광영 작가가 한지 조각들로 빚은 ‘마음의 대지’다. 적게는 수천 개, 많게는 수만 개에 이르는 한지 조각들은 촘촘하게 화면과 공간을 채운 채 거울처럼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한다. 여기에는 현대사회의 불안과 위기감, 치유와 화합이 모두 담겨 있다. 돌출된 부분이나 어두운 타원형 웅덩이, 다양한 색으로 뒤덮여 글자의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 한지 조각들은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여러 충돌의 결과를 상징한다.

    ‘한지 작가’로 불리는 전광영 작가의 개인전 ‘Aggregations: Resonance, In-between’이 오는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빛’ 시리즈와 1995년부터 이어져온 ‘집합(Aggregation)’ 시리즈는 물론, 대형 설치 작업과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근작까지 전광영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한지로 감싼 삼각기둥 조각은 작가가 어린 시절 봤던 한약방의 풍경과 한국의 보자기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서양은 ‘박스 문화’죠. 직육면체를 정확하게 재서 차곡차곡 쌓아 유통합니다. 반면 한국은 ‘보자기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집간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싸주는 보자기. 그 속에 하나라도 더 담으려는 마음. 계량이 어렵고 보자기 모양도 망가지지만 그게 바로 한국의 정이자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작가는 “나는 마음의 보자기를 싸는 사람”이라며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표 연작 ‘집합’은 논어나 맹자, 법전, 소설 등 고서(古書)의 내용이 담긴 한지로 삼각기둥 스티로폼을 감싼 후 종이를 꼬아 만든 끈으로 묶고, 화판에 촘촘하게 매달아 완성한다. 서로 다른 고서의 이야기들을 한 데 모아 조화와 충돌을 반복하는 인류의 모습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조각의 형태는 모두 직각삼각형 기둥이다. 붙이는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조각들은 빈 틈 없이 화면과 입체를 메운다. 그는 “(직각)삼각형은 이어 붙이다 공간이 비면 그 사이에 다른 삼각형을 끼워 넣어 꽉 채울 수 있다”며 “우리 사람들도 서로 다르지만 마음만 먹으면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뜻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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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영 ‘Aggregation001-MY05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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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합’은 1995년 처음 등장한 이래 다양한 형태로 변주됐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색채의 변화다. 홍천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색을 보며 받은 영감을 작품에 옮겼다. 신작 ‘Aggregation24-FE011’(2024)에서는 매마른 땅에 물줄기가 스며 들어오듯 중앙을 가로지르는 파란색 형상이 눈에 띈다. 같은 파란색 계열이라도 한 가지 색이 아닌 여러 가지 파란색이 조각 조각 중첩돼 공간감을 배가시킨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에 출품했던 첫 입체 작업 ‘Aggregation001-MY057’을 비롯해 대형 설치 작품 4점도 전시된다. 높이 3m, 1.1m의 원기둥 12개로 이뤄진 ‘Aggregation001-MY057’은 지난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에 5개의 원기둥으로 재구성돼 전시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은 6개의 원기둥으로 재탄생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듯한 형상의 설치 작업 ‘Aggregation19-MA023’(2019)도 눈길을 끈다. 가로 폭 11m, 세로 폭 4m의 영상 작업 ‘Eternity of Existence’(2024)와 함께 배치돼 경이롭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 영상 작업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낙수를 촬영한 장면을 끝없이 보여 준다. 수만 년의 시간을 품은 자연과 인간이 대면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시각적으로는 관객을 압도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두려움과 의아함을 증폭시킨다.

    전 작가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1971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원 회화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는 아트페어 ‘아트바젤 바젤’의 언리미티드 섹션에 초청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8년과 2022년 각각 미국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과 모스크바현대미술관(MMOMA)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지난 2018년에는 경기 용인 수지구에 미술관 ‘뮤지엄 그라운드’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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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영 작가가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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