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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이은아칼럼] '수지는 탈팡 못할걸' 쿠팡의 믿는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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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이은아 논설위원


    "고객님께만 드리는 '시크릿 쿠폰' 도착했습니다." "당첨 축하합니다. 한정 기간 쿠폰이 도착했습니다." 쿠팡에 기꺼이 제공했던 이름과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문 정보가 '노출'됐다는 안내 문자는 이런 문자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쿠팡은 회원 3370만명에게 이런 방식으로 정보 유출을 통보했다.

    다음날 소소한 생활용품을 사야 할 일이 생겼다. 쿠팡에 소심한 저항을 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쇼핑몰을 기웃거렸다. 마침 쿠팡과 같은 가격에 제품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당일배송이 가능한 쿠팡과는 달리 다음날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하루쯤 배송이 늦는 것은 감수하기로 했다. 개인정보를 소홀하게 관리하고 회원을 홀대한 결과가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동안 로켓배송에 길들어 있었을 뿐, 따지고 보면 그렇게 급하게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이참에 '탈팡(쿠팡 탈퇴)'이 가능할지 찬찬히 따져보기로 했다. 일상 깊숙이 침투한 쿠팡과의 이별은 감정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신선식품 새벽배송. 새벽배송 업체는 많고, 이미 몇몇 쇼핑몰을 유료회원으로 이용 중이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다음은 공산품. 최저가·당일배송 등이 아쉬울 때도 있긴 하겠지만, 한밤중에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고 알림장을 내미는 어린 자녀가 없기 때문에 쿠팡이 없어도 참을 만할 것 같았다. 쿠팡이츠에만 입점한 단골 식당이 있긴 하지만, 음식 배달도 다른 대안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해 당장은 탈팡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국 프로농구, 유럽 축구 등 스포츠 중계를 독점하고 있는 쿠팡플레이의 스포츠패스를 추가로 결제하고 이용하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탈팡을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 역시, 다양한 사연으로 쿠팡 앱을 다시 열고 말았을 것이다. 쿠팡이 믿는 구석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쿠팡 유니버스에 이미 갇힌 이상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쿠팡은 2021년 뉴욕 증시 상장 당시 제출한 보고서에 "고객들 입에서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더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미션"이라고 적었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워킹맘 수지는 온종일 바쁘게 일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 딸의 발레복과 다음날 아침 먹을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쿠팡은 수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오전 7시가 되기도 전에 배송해줌으로써 미션을 달성했다.

    JP모건도 쿠팡의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시장 지위, 한국 소비자들의 낮은 데이터 유출 민감도를 근거로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탈팡이 어려운 것은 소비자만이 아니다. 그저 편리한 것을 넘어 필수적인 플랫폼이 된 쿠팡을 통해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과 소상공인, 쿠팡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멤버십 요금을 한 번에 50% 넘게 올려도, 자체브랜드(PB)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검색 순위를 조작했다며 과징금을 부과받아도, 배송기사가 과로로 목숨을 잃어도, 검사 외압 의혹이 불거져도 끄떡없었던 쿠팡은 이번에도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비자를 '잡아놓은 물고기'로 여기고, 한국 시장을 현금 창구로 인식하는 것이 쿠팡의 진심이라면 소비자들의 생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영향력이 급속히 줄었듯 쿠팡이 그 길을 걷지 말라는 법도 없다. 탈팡을 잠시 미뤄둔 수지들은 쿠팡의 진정성 있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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