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국립순천대 석좌교수 |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 기록을 세운 'K팝 데몬 헌터스'는 혁신적 융합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K팝 아이돌이라는 초현대적 글로벌 문화와 한국 무속신앙 속 저승사자를 결합한 이 작품은, 동서양과 과거-현재, 대중문화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무엇이든 섞고, 초월하며,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융합의 폭발적 창조성이 문화 콘텐츠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이런 한국의 창조적 융합 역량은 '케데헌'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불과 5년 만에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배달앱 산업을 보자.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이미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배달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과 같은 배달 플랫폼들이 빠르게 진화했다. 빠른 속도, 실시간 추적, 다양한 결제 방식의 융합, 그리고 여기에 정보통신(IT) 인프라와 음식 문화, 밀집된 도시 구조가 절묘하게 결합된 한국만의 창조적 융합이 있다.
이제 문화적·기술적 성취를 가능하게 한 창조적 융합의 힘을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할 시점이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 진입 이후 새로운 혁신적 성장 모델을 모색해야 하는 전환기에 있다. 문화 콘텐츠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보여준 혁신적 융합 역량을,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반으로 확장할 기회가 열려 있다. 대기업의 기술력과 스타트업의 유연성·민첩성, 그리고 한국 국민의 높은 교육수준과 디지털 인프라의 강점을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창조적 융합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경제 환경적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 혁신적 제도와 인프라 자체가 중요하다. '케데헌'이 보여준 탈 경계적 상상력, 배달앱을 성장시킨 기술적·사회적 융합력을 경제 구조의 혁신으로 연결하려면, 우리 경제는 어떠한 요소가 필요할까.
무엇보다 융합을 가속화하는 제도적 유연성 강화가 필요하다. 반도체와 바이오, 제조와 서비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산업 간 융합이 새로운 혁신과 성장 동력을 만든다. 이를 위해 산업 간 융합 자체를 장려하는 전방위적 제도 혁신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경제구조 전환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기업, 연구기관 등이 자유롭게 협력하고 아이디어를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과 융합 R&D 지원 정책도 필요할 것이다.
교육과 인력양성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융합적 사고와 협업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 수학, 공학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적 소양도 갖춘 인재, 나아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인재가 창조적 융합에 적합한 인재상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새로운 도전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도 중요하다.
창조적 파괴 못지않게 창조적 융합이 중요한 시대다. '케데헌'의 융합적 상상력이 문화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사회 구조 전반으로 확산될 때,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경로를 개척할 것이다. 한국이 보유한 역동성과 혁신 DNA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그것이 경제혁신이자 곧 사회혁신이다.
[백승주 국립순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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