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유효기간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민주노총 주최 대통령 체포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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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밤 서울 한남동 관저 앞 도로. 자정 가까운 시각에도 많은 이들이 도로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 연설에 귀 기울이며 구호를 외치거나 응원봉을 흔들었다. 노숙 채비를 든든히 한 듯 두툼한 깔개들이 보였고, 대열을 오가며 도시락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일행과 무대 가까이 비어 있는 곳에 자리 잡자 집회장을 떠나는 이가 은박담요를 건네줬다. ‘수고하라’ ‘이제부터 내가 지킨다’는 무언의 바통터치가 곳곳에서 이뤄졌다.
은박담요를 휘감은 시민들의 몸은 야간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물방울 모양의 내용물을 은박지로 포장한 초콜릿처럼 보여 ‘키세스 시위대’란 별명이 붙는다. 새벽 눈발에도 꿈쩍 않고 자리 지키는 모습은 등신불(等身佛)과도 닮았다.
물리학자 김상욱에 따르면 은박담요는 NASA가 우주인들의 보온을 위해 개발했다고 한다. 진공의 우주에서는 복사(輻射)가 열손실의 주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을 얇은 플라스틱 소재에 코팅한 은박담요는 몸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반사해 체온을 보존해준다. 실제로 은박담요는 꽤 따뜻했다.
보통의 집회장은 무대를 중심으로 앉은 참가자들과 그 주위를 둘러싼 채 서 있는 이들로 나뉜다. 대열을 비집고 들어가 아스팔트 위에 앉으려면 결단이 필요하다. 12·3 불법계엄 이후 지속되는 집회 현장은 추운 날씨를 녹이는 특유의 온기가 진입 문턱을 낮춘다. 그 온기는 ‘함께 못해 미안한’ 시민들이 선결제로 보내온 커피·붕어빵·어묵차, 현장에서 낯가림 없이 공유되는 간식·핫팩, 집회장을 비우는 이들이 새 참가자에게 고스란히 물품을 내주는 ‘바통터치’가 만들어낸다. 집회장은 가장 비자본주의적 공간이다.
여의도·남태령을 거쳐 한남동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대가 경이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응원봉, 선결제, 은박담요에 언 몸을 녹일 난방버스와 난방성당(한남동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까지.
한남동의 ‘키세스 시민’은 한 명 한 명이 ‘빙산의 일각’이다. 그들이 앉은 아스팔트 바닥마다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거대한 열망 덩어리가 깔려 있다.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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