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의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도로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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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 128-24. 대통령 관저가 요새화하고 있습니다. 철조망을 둘러치고 차벽을 쌓고 수백명의 경호처 직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총기를 소지한 직원도 있었습니다. 법원이 발부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성역’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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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는 살인죄보다 더 중대한 범죄입니다. 살인죄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반인륜적인 존속살해죄도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반면 내란죄 형량은 우두머리의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뿐입니다. 내란의 중요 임무에 종사한 자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처합니다.
백주대낮 공공장소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제 집으로 도망가 숨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당한 살인이었다고 주장하면 그 말에 귀기울여야 할까요? 범인이 폭력조직 두목이어서 조직원 수백명을 불러모아 사제 총과 흉기로 무장한 채 체포에 저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토 내에 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은 없어야 한다”
그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더 이상 ‘국가’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법치는 나라를 유지하는 근간입니다. ‘근대 형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계몽주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는 대표작 ‘범죄와 형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한 국가의 영토 내에서 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은 없어야 한다.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 법의 힘은 그 나라의 국민을 따라가야 한다…성역은 범죄를 조장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이런 성역의 수를 늘리는 것은 (한 국가 안에) 작은 주권 국가를 여러 개 세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법에 권위가 없을 때 공익에 반대하는 새로운 조직이 생겨나고 국가의 이익에 반대되는 정신이 일어설 수 있다.”(‘성역에 대하여’ 중에서)
여러 고대 문화권에 범죄자가 숨어있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있었습니다. 고대 한반도에도 ‘소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모양을 갖추면서 법적 성역은 사라졌습니다. 아무리 종교적 권위가 강한 장소라고 해도 법 집행을 피해가지는 못하게 됐습니다. 법의 지배를 벗어난 공간을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은 물리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적이나 산적 무리가 특정 지역을 무력으로 장악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중남미 국가의 마약 카르텔 본거지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 안에서는 범법자들이 법 집행자가 되고, 공권력은 되레 진압 대상이 됩니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들머리에서 관계자들이 도시락 등을 들고 관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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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 관저가 그런 공간이 돼버렸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저들만의 주권 국가 같은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이 자체로 또 하나의 내란이고 반란입니다. ‘경호관’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공직자들이 대통령 관저에서 벌이고 있는 행위의 본질이 그러합니다. 윤석열과 경호처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에는 수사기관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식이면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군부대 안으로 도망가기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살인범이 군부대 안으로 도망가도 그 시설의 책임자가 불허하면 수사기관이 체포하러 들어갈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합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피의자가 제멋대로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저항하는 게 허용된다면 이는 ‘법적 성역’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법 앞의 평등’(헌법 제11조)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윤석열은 12·3 내란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데 이어 지난 3일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음으로써 법치주의마저 무너뜨렸습니다.
평생 검사로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기대어 수많은 사람들을 체포·구속했고 검찰총장까지 지냈던 윤석열입니다. 법원의 체포영장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부정을 넘어 검찰에 대한 부정이기도 합니다. 검찰의 모든 수사 행위의 정당성을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거나 심지어 법원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집행까지 거부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법시스템을 부정하는 건 그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을 수호할 가장 큰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최상목 부총리는 국법질서를 부정하는 이같은 행위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이름조차 붙이기 창피한 작태입니다.
‘법 집행자-범법자’ 역전시킨 검찰의 ‘법 기술’
지난 이야기(윤석열 내란의 뿌리 검찰, 국가를 삼키다)에서는 ‘윤석열 내란’의 뿌리가 검찰에 있음을 짚었습니다. 군을 사유화한 12·3 쿠데타가 검찰권을 사유화한 과거 행적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법 집행을 무력화하려는 지금의 행태 역시 뿌리는 검찰에 가닿습니다.
검찰은 법 집행을 책임지는 기관인데도 법 집행에 손을 놓거나 정당한 법 집행을 되레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들어맞는다고 여기면 법 집행 따위는 헌신짝 취급했습니다.
단적인 사례는 국민 모두가 기억하는 ‘김건희 황제 조사’입니다. 전두환·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도 피해가지 못한 검찰 소환조사를 김건희씨는 거뜬히 피해갔습니다. 경호처 관할 건물로 검사들을 불러 조사받았습니다. 지금 경호처가 보이는 안하무인 태도로 미뤄볼 때, 당시 경호처의 감시하에 이뤄진 조사 과정이 어떤 모양새였을지 능히 짐작이 됩니다. 검사들은 휴대전화까지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과연 ‘조사’라고 할 게 있었을까요? 검사들이 김씨 앞에 무릎을 꿇고 있지 않았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검찰은 ‘검찰 우두머리’를 위해 ‘법 앞의 평등’을 팽개쳤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사진 왼쪽)이 2029년 3월22일 밤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다 출국을 제지당한 뒤 일행과 함께 돌아 나오고 있다. JTBC 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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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은 어떻습니까. 지난 2019년 3월 ‘별장 성접대’와 뇌물 혐의로 재수사를 앞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심야에 몰래 출국하려다 긴급 출국금지를 당했습니다. ‘제 식구’인 김 전 차관을 지켜주지 못한 게 분했을까요. 검찰은 2021년 1월 뒤늦게 긴급 출국금지를 주도한 검사와 법무부 간부, 청와대 비서관 등을 겨냥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중대 범죄라도 되는 양 “충실한 수사”를 직접 지시했습니다. 검찰은 출국금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온갖 트집을 잡아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해 11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몰래 해외로 도피하려는 피의자를 막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법 집행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그 상식적인 법 집행을 되레 불법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를 바로잡는 데 4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민들이 법 기술에 속아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되레 불법이라고 우기는 윤석열의 지금 행태와 똑같습니다. 죄를 저지른 자와 법을 집행하는 자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뻔뻔한 법 기술입니다. 이런 둔갑술로 국민을 또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억지와 꼼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체포영장이 잘못됐다는 윤석열 쪽의 이의신청도 단박에 기각했습니다. 더 이상 속을 국민은 없습니다.
“법 어기면 어떤 고통 따르는지 보여줘야”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 2022년 11월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취재하기 위해 아파트 현관 앞에 찾아간 유튜브 매체 ‘더탐사’를 겨냥한 발언이었습니다. 한 장관은 이들을 주거침입으로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강진구 당시 더탐사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습니다. 애초 대통령이 나설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며 핏대를 세웠습니다. ‘법 집행’이란 말 앞에 모두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윤석열은 내란을 저질렀습니다. 국회의사당을 침탈했습니다. 총 든 군인들을 동원했습니다. 주거침입과는 비교 불가능한 중대 범죄를 저질러놓고 정작 자신은 법 집행을 피해 숨어 있습니다. 여전히 법 위에 살고자 합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자신이 한 말대로, 보여줘야 합니다. 영장 집행을 가로막은 경호처 간부·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10월8일 서울공항으로 입국하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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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기술을 통해 교묘하게 만들어지곤 했던 ‘법적 성역’이 버젓이 눈앞에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초현실적입니다. 이 상황을 끝낼 책임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법 집행 기관들에게 있습니다. 최 권한대행은 경호처에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지 말도록 지시해야 합니다. 공수처와 경찰은 단호히 체포영장을 집행해야 합니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김건희씨를 기소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는 고사하고 ‘국가’라고 할 수도 없는 무법천지에 불과할 것입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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