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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송평인 칼럼]‘예외 상태’ 망둥이 뛰니 꼴뚜기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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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비상계엄으로 ‘예외 상태’ 만들려던 윤석열

줄탄핵으로 또 다른 ‘예외 상태’ 만들려는 민주당

판사까지 위법적 영장으로 ‘예외 상태’ 만들려 해

정상 상태에서 질서 있는 탄핵이 중요하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제시한 예외 상태라는 개념이 있다. 계엄이나 혁명 등으로 법의 관철이 중단되는 시기를 말한다. 법의 관철이 중단된다는 점에서는 혼란의 시기이지만 이 혼란 속에서 새 질서가 태어나는 시원적 순간이기도 하다고 슈미트는 봤다. 위험한 개념이다. 슈미트는 하이데거처럼 지적으로 뛰어난 학자였지만 그들의 뛰어남이 결과적으로 나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예외 상태를 촉발하려고 했던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그는 예외 상태를 만들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주도하는 국회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새 권력지형을 창출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그러자 그 무산을 기화로 민주당이 대통령을 넘어 총리까지 탄핵하고 부총리의 탄핵까지 위협하면서 유사(類似) 혁명적인 예외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국회가 대통령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탄핵시킨 것은 헌법 질서에 따른 정상적인 조치다. 그러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국회 재적의원 과반만으로 탄핵시킨 것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 한번 대통령 권한대행에 적용된 비헌법적 탄핵 정족수는 언제든지 다른 권한대행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 혁명적이다.

헌법재판소만이 민주당이 조장하는 유사 혁명적인 예외 상태를 중단시킬 수 있다. 헌법에 대통령 권한대행에 적용되는 탄핵 정족수가 없다면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논란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헌재는 이에 대한 결정을 가처분 형식으로라도 최우선해서 내리지 않고 미룸으로써 예외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망둥이들이 예외 상태를 조장하는 틈을 타 정상 상태에서의 불능(不能) 상황을 예외 상태로 취급하는 꼴뚜기들까지 등장했다.

대통령은 내란 혐의에서는 형사상 소추가 면제되지 않는다. 내란죄 수사권이 어느 수사기관에 있느냐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수사권 있는 수사기관이라면 대통령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체포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탄핵소추가 됐을 때도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는 신분을 유지한다. 경호처는 여전히 대통령 신분이 유지되고 있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그가 거주하는 공간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수사기관의 권한과 경호처의 의무는 둘 다 법적 근거를 갖는 것으로, 어느 것이 우선한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이 충돌은 예외 상태가 아니라 정상 상태에서 법이 예견하지 못한 불능 상황일 뿐이다.

문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까운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먼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하고 그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하면서 멋대로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의 적용을 배제했다는 점이다. 두 조항은 군사적으로 혹은 공무적으로 비밀을 요하는 장소에 대해서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자신이 직무를 봤던 대통령실에 대해서는 책임자라고 볼 수 없지만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는 대통령 신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자신이 거주하는 대통령 관저에 대해서는 책임자라고 볼 수 있다.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우 의장처럼 법 적용이 아니라 법 창조로 나아가 유사 혁명적인 예외 상태를 만드는 데에 가담했다.

대통령 체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사기관과 경호처의 충돌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성격의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소추가 인용돼 신분을 잃으면 경호처가 그의 지시를 따를 의무가 없어지고 수사기관은 즉각 그를 체포할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이 탄핵소추가 기각돼 직무에 복귀하면(난 그럴 리가 없다고 보는 쪽이다) 직무 수행을 고려해 인신 제한 없이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받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하면서 관저를 도피처로 삼고 있는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강제 조사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남동의 혼란은 이 문제를 지금 당장 예외적으로 해결하려는 조급함에서 빚어졌다. 수사기관과 경호처가 힘으로 대치한다면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현직인 대통령의 체포는 국가적 수치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체포하려는 계속적인 시도가 제대로 된 탄핵심판을 방해할 수도 있다. 좀 더 여유를 갖고 조사 방식을 조율하는 게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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