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세상 언어들의 이모저모를 맛보는 어도락가(語道樂家)가 말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틈새를 이곳저곳 들춘다. 재미있을 법한 말맛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며 숨겨진 의미도 음미한다.ⓒ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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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자를 드물게 써서 그렇겠지만 신문이나 책에 병기한 한자가 틀린 경우가 이따금 보인다. 나도 한때 절필(絕筆)의 '절'을 꺾을 折로 착각했었다. 글로 쓴 적이 없어서 다행히 망신을 당하진 않았다. '붓을 꺾다'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데 실은 끊을 絕을 쓴다. '끊을 절'은 切과 截도 있어서 셋 다 제대로 알려면 꽤 헷갈릴 법하다. 이 가운데 한자어에서 截은 거두절미(去頭截尾)나 수학용어 절편(截片) 말고는 쓰임이 적다. 絶은 절교(絕交), 절망(絕望), 거절(拒絕), 근절(根絕)처럼 주로 추상적인 개념이 많고 切은 절단(切斷), 절삭(切削), 품절(品切)처럼 구체적인 사물을 끊거나 자르는 경우가 많다.
'꺾다'도 '끊다'와 접점이 있으나 굴절(屈折), 골절(骨折), 절반(折半), 요절복통(腰折腹痛) 등 비교적 많이 쓰는 한자어를 보면 '끊는 행위'와 달리 '꺾인 상태'를 주로 나타낸다. 絶은 절대(絕對), 절경(絕景), 절묘(絕妙), 절정(絕頂)처럼 '다함, 뛰어남, 비상함, 최고' 따위도 뜻하고 대개 앞의 絶이 뒤의 요소를 수식하는 얼개다. 切은 절실(切實), 친절(親切), 절박(切迫)처럼 '뼈저리다, 딱 맞다, 다급하다'도 되며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간절하다/적절하다'처럼 '하다'가 붙는 형용사 어근도 많다.
한국어, 일본어 모두 '붓을 꺾다(筆を折る 후데오 오루)'가 똑같고 한국어는 '붓을 놓다/던지다', 일본어는 筆を断つ(붓을 끊다: 후데오 다쓰)도 있으며, 한자어 표현은 둘 다 절필(絕筆)을 많이 쓴다. 주된 중국어 표현은 封筆(봉필: 붓을 봉함), 擱筆(각필: 붓을 놓음)이며 각필은 한국어, 일본어 사전에도 나오나 많이 쓰는 말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각필'은 '쓰던 글을 중간에 그만두고 붓을 내려놓음' 및 '편지 따위에서 이제 그만 씀을 이르는 말'이라서 아예 글쓰기를 관둔다는 절필(絕筆)과는 다르다. 중국어처럼 베트남어도 각필에 대응하는 gác bút[각붓: 붓을 놓음]으로 절필을 일컫는다.
절필 선언은 글을 쓰는 작가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한다. 이제는 글을 쓸 때 붓(筆)도 펜(pen)도 안 들고 주로 키보드를 두드리니, 글자 그대로 '붓을 꺾다'나 '절필'은 화가에게 더 어울린다. '끊을 절'이라도 切이 아닌 絕인 것은 앞서 말했듯 행위의 추상성 때문인 듯싶다. 진짜로 붓을 끊는 게 아니고 붓으로 상징되는 글쓰기를 끊는 것이니 絕筆이 들어맞겠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현대의 문필가라도 '절필'은 맞는 셈이다.
딴 언어에서는 그냥 글쓰기를 관둔다고 하면 되기에 '절필'과 '붓을 꺾다/던지다/놓다/끊다'라는 표현은 한자 문화권에서 주로 쓴다. 과거에는 작가의 절필이 의미가 상당했다면 현재는 누구나 뭐든 쓰므로 의미가 덜할 것이다.
글쓰기를 비롯한 많은 지적 활동을 인공지능에 의탁하는 시대까지 왔다. 불필요한 말도 내뱉는 인공지능한테 절필까지는 아니더라도 술 마시기를 알맞게 줄이는 절주(節酒)처럼 절필(節筆)을 가르치면 좋을 테지만, 인공지능이 알아서 글을 써주고 소설까지 창작하는 시대에 글을 쓸 의욕이 꺾일 사람도 적지 않다. 절필(絕筆)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나 글씨'도 뜻하나 드문 용법인 반면, 중국어 絕筆[줴비]는 주된 뜻이 '마지막 작품' 또는 '걸작'이다. 우리 인간이 많은 걸작을 남겼다면 앞으로 글을 안 써도 되는 것일까.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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