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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참사 9일 만에 장례…무안공항에 남겨진 유가족들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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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9일째를 맞은 무안국제공항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참사 직후부터 취재진으로 북적이던 공항 2층 브리핑 장소에는 텅 빈 의자들만 가득했다. 유가족 대표단이 절규 섞인 목소리를 내뱉던 단상 위에는 마이크 두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참사로 희생된 가족이 수습될 날을 기다리며 유가족들이 매일 밤을 버티던 텐트형 임시 거처도 대부분 빈 상태였다. 이날(6일) 기준 참사 희생자 179명 전원이 신원 확인을 마치고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신원 확인될 때까지, 시신 복원될 때까지…참사 뒤 9일의 기다림
참사 뒤 무안공항에 합동분향소를 열고, 북받치는 심정으로 참사 현장에 직접 가보고, 끝내 가족의 장례를 치르기까지. 이 열흘 가까운 기간 동안 유가족들은 헤아리기 힘든 고통과 슬픔 속에 잠겨 있었다.

참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30일,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피해자들의 유해가 격납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동안 시체는 부패하고 있을 것”이라고 취재진 앞에 충격적인 현실을 토해냈다. 유가족의 절규 뒤에야 12월 31일 희생자들의 시신은 냉동 컨테이너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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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2일 째를 맞은 지난해 12월 30일, 박한신 유가족 대표가 취재진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하염없는 기다림과 고통스러운 선택이 유가족들에게 뒤따랐다. 세상을 떠난 가족의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 시신이 최대한 온전히 복원될 때까지 기다릴지, 그전에 확인된 시신만 인수해서 장례를 치를지도 유가족들은 선택해야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을까, 참사 상황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가족들이 지난 9일의 시간 동안 이 질문들의 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국립나주병원 호남권 트라우마센터장은 현재 무안공항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을 위한 트라우마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김경민 센터장은 “(시신 인수를 두고) 어떤 경우를 선택하더라도 추후에 가면 후회나 자책감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떤 경우를 선택하더라도 나중에 추후에 가면 어떤 마음이든 후회나 자책감이나 ‘그때 내가 그랬어야 했을까’라는 마음들이 남을 수밖에 없거든요. 특히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내가 온전히 생각하고 온전히 집중하는 부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나 내가 정말 잘 선택한 게 맞는지, 이런 어려움들도 굉장히 많이 호소하셨습니다.
- 김경민/국립나주병원 호남권 트라우마센터장


가족의 비극적 죽음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겨냥한 각종 악의적 비방과 모욕마저 온라인 공간에 쏟아졌다. 무안공항 2층 브리핑장 근처에도 더불어민주당 항공사고대책위원회가 갖다 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짜뉴스·악플 피해 신고서’가 놓여 있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참사 관련 온라인 악성 게시글과 영상 등 159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내 가족들도 밤마다 울고 아빠가 왜 거기서 유튜버들한테 공격당하면서 버티고 있냐고 작은 아빠 시신을 찾으면 다 던져버리고 나오라고 합니다. 근데 내 딸한테도 그랬습니다. 아빠가 만약에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 작은 아빠가 아빠를 찾기 위해서 이렇게 하지 않았겠냐…
- 박한신/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대표 (2025.1.2.)


유가족들 곁을 지킨 무지갯빛 추모들
하지만 참사 이후 무안공항 한편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민들의 쪽지와 무지갯빛 글씨가 적힌 편지들이 가득했다. 공항 2층에서 1층 분향소로 향하는 계단 난간에 부착된 추모 메시지들은 하루하루 늘고 있다. 아무 글자도 적히지 않은 빈 쪽지들도 함께 붙어 있다. 추모객들은 갑작스럽게 곁을 떠난 가족과 지인, 얼굴도 모르는 이웃을 애도하며 빈 쪽지에 마음속 염원을 채워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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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무안국제공항 내 계단 난간에 붙은 추모 메시지들.
믿을 수 없는 비극 앞에 무너져 내린 유가족들, 이들 곁을 참사 직후부터 묵묵히 지켜온 사람들도 있다. 김영민 자원봉사자는 유가족들 걱정에 지난해 12월 31일 무작정 무안공항에 왔다. 같은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한 자원봉사자들과 할 일을 찾아 역할을 나누고 일하며 일주일째 공항에 머물고 있다. 김영민 씨는 옆에서 지켜본 유가족들의 슬픔을 취재진에게 전하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제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그 슬픔이 이렇게 한 공간에 이렇게 응집되어 있는데, 가족을 잃은 사람이 나뿐만 아니니까 모두가 그 슬픔을 애써 좀 참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특히 밤늦은 시간이나 아침, 이른 새벽 시간에 조용히 나와서 이렇게 분향소 안쪽도 못 들어가시고 먼발치에서 이렇게 하염없이 분향소를 바라보고 흐느끼다 가시는 가족분들이 너무 많으시더라고요.
- 김영민/자원봉사자


유가족들이 겪는 슬픔의 무게와 비교할 수 없다면서 같이 아파하는 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수일째 장기 봉사 중인 유미 씨는 “요즘에는 2시간 자고 다시 나와서 봉사를 하고, 자려고 해도 자꾸 그 (참사) 장면이 생각이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그냥 움직이는 게 낫겠다 해서 다시 나온다”고 말했다.

김경민 호남권 트라우마센터장은 참사 현장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나 소방, 경찰 인력 등이 실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본인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 도움을 받으러 오는 것 자체에 많은 죄책감을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본격 원인 규명은 지금부터…“진상 조사에 유가족 참여해야”
참사 유가족들과 이들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가 힘들지만, 아직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장례를 마치는 대로 다시 무안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참사 원인 조사를 비롯한 진상 규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참사 원인 조사를 맡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들은 조사 과정에 공정성과 투명함이 담보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철저한 진상 조사만이 희생자의 억울함을 달래고 유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고 7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조사단의 활동과 조사 내용을 알지 못하는 깜깜이 상황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유족들은 항공사고 조사단의 구성과 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항공사고조사위원회와 조사단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상조사를 할 수 있을지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 이혁/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 대표단 장례위원장 (2025.1.4.)


우리는 아래의 사항을 요구한다. 첫째, 국토부는 조사위원회와 조사단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라. 둘째, 국토부는 조사단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정보를 유가족에게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하라. 세 번째, 조사단은 조사 절차에 있어 유가족의 의견 진술 기회를 보장하라.
- 이혁/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 대표단 장례위원장 (20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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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내 참사 현장. 참사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콘크리트 둔덕과 로컬라이저가 보인다.
유가족과 전문가들은 철저한 진상 조사만이 희생자의 억울함을 달래고 유가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백종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999년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이후 희생자 부모들이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한 사례를 언급했다. 백종우 교수는 “(유가족들이) 이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는 데 힘쓰시는 것”이라며 “이런 의미를 인정받고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갔을 때 그게 굉장한 치유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해정 재난피해권리센터장은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추천한 전문가들이 원인 조사에 참여해 “유가족들이 얘기하는 의문들의 많은 부분이 풀렸다”고 설명했다.

(제천 화재 참사 당시) 유가족분들이 우리가 추천한 인사, 인사라고 이야기하는 전문적인 인사를 같이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추천을 하셨고 그분들의 추천을 받아서 2차 합동 조사가 만들어졌거든요. 2차 합동 조사는 1차 합동 조사는 굉장히 달랐어요. 유가족들이 얘기하는 의문들의 굉장히 많은 부분이 풀리기도 했고 소방의 문제점이 훨씬 더 크게 지적되기도 했었거든요.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이 조사가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좀 객관적이고 투명한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때 이 긴 조사의 기간 동안 유가족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유지하거나 트라우마를 적게 받으면서도 이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와 조사 기관에 대한 신뢰를 획득할 수 있을 거라는……
- 유해정/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참사 원인) 조사가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 유가족들이 트라우마를 적게 받으면서도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유해정 센터장은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전한 ‘연대의 힘’
지난 3일 무안공항을 찾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과 더불어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를 겪은 가족끼리 서로 연대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같이 공감하면서 아파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트라우마 치유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임현주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피해자들의 시간은 굉장히 더디 간다. 저희한테 분명히 도움을 바라실 때가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 중심의 온전한 추모와 애도가 계속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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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모습.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기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남겨진 유가족들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와 지원이 절실한 때다. 유가족들을 향한 과도한 연민을 지양하는 것. 각종 혐오와 비방, 모욕 등 유가족들에 대한 명예 훼손을 사라지게 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선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불안, 우울 등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관련 링크 : https://nct.go.kr/)

국가트라우마센터 : 02-2204-0001 (8:30~17:30)

호남권트라우마센터 : 061-330-7724 (8:30~17:30)

정신건강위기상담 : 1577-0199 (24시간 운영)

뉴스타파 박상희 sacha@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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