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5′의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 센터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로봇 공학의 ‘챗GPT 모멘트(moment)’가 오고 있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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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일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5′에서 인공지능(AI) 로봇 시대를 전망하며 글로벌 파트너사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들과 연단에 올랐다. 주목할 점은 그가 무대 스크린에서 소개한 14개의 로봇 가운데 6개가 중국산(産)이란 것이다. 한국산 로봇은 없었다. 미국산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E-아틀라스’, 애질리티로보틱스의 ‘디지트’, 피규어의 ‘피규어 02′, 앱트로닉의 ‘아폴로’ 등 4개에 불과했고, 노르웨이(1X의 ‘네오’), 이스라엘(멘티의 ‘멘티봇’), 독일(뉴라로보틱스의 ‘4NE-1′), 캐나다(생츄어리AI의 ‘피닉스’)는 한 개씩 무대에 올렸다.
이날 무대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굴기(崛起·우뚝 일어섬)’가 본격화됐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은 산학연 연계가 원활해 생태계 확장 속도가 빠른데다, 자본 유입 규모가 커서 단기간에 ‘스타 기업’이 탄생하는 구조다. 유리한 산업 환경을 등에 업고 전기차 회사인 샤오펑, 베이징대·칭화대의 교내(校內) 벤처 등 의외의 플레이어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했고, 이제는 산업용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용 로봇 개발도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의 챗GPT 출현 후 2년 동안 계속됐던 AI 모델 개발 경쟁이 휴머노이드 로봇(AI 기술을 접목한 로봇)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젠슨 황이 ‘픽(pick)’한 중국산 로봇 6종(유니트리 ‘H1′, 샤오펑 ‘아이언’, 갤봇 ‘G1′, 로봇에라 ‘스타1′, 즈위안 ‘A2′, 푸리에 ‘GR-2′)을 들여다 보자.
◇아이언: 자율주행차의 뇌를 가졌다
중국의 전기차 회사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휴머노이드로봇 '아이언'. /샤오펑·웨이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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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은 자율주행차(車)를 만드는 회사가 내놓은 로봇이다. 중국에서 전기차 3대장으로 통하는 ‘웨이샤오리(蔚小理·웨이라이, 샤오펑, 리오토)’의 샤오펑(小鵬)이 작년 11월 출시했다. 키 178cm, 몸무게 70kg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관절은 62개에 달한다.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샤오펑의 자체 개발 반도체 칩인 ‘투링 AI 칩’을 뇌로 삼았다. 덕분에 동선 파악에 능하고, 섬세한 움직임도 구현할 수 있다. 샤오펑 측은 “자율주행 시스템 위에서 탄생한 이 로봇은 자동차에 적용되는 ‘AI 시각 처리 시스템’도 탑재돼 있어 사각지대 없이 주위를 본다”고도 했다. 이미 샤오펑의 자동차 생산 라인에 투입돼 최신 전기차 모델인 P7+의 부품 조립을 맡고 있다. ‘취준생’인 수많은 휴머노이드 로봇들과 달리 어엿한 ‘대기업 직장인’인 셈이다.
◇베이징대는 ‘상체’, 칭화대는 ‘하체’
베이징대표 로봇-베이징대 기반 로봇 회사인 갤봇이 출시한 'G1'. 바퀴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갤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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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화대표 로봇-칭화대 실험실에서 탄생한 '로봇에라'가 출시한 휴머노이드로봇인 '스타1'. 뛰는 폼은 어색하지만, 속도는 빠르다. /로봇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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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와 베이징대가 각각 출시한 휴머노이드 로봇들도 젠슨 황의 선택을 받았다. 베이징대의 로봇은 상체, 칭화대의 로봇은 하체에서 최고의 성능을 뽑아냈다. 중국에선 ‘상용화’가 시급한 첨단 기술 분야에서 대학들이 연구 단계에 머물지 않고 상품 출시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선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베이징대 주도로 2023년 5월 설립된 로봇 스타트업인 갤봇(GALBOT·银河通用)은 G1을 개발했다. 이 휴머노이드 로봇은 접이식 몸체와 360도로 움직이는 바퀴가 특징이다. 젠슨 황이 거느린 로봇 군단 중에 유일하게 다리가 없는 로봇이지만, 손은 야무진 편이라 쇼핑몰과 약국·은행에서 물품이나 종이를 집어서 건네주는 일을 한다. 갤봇의 창업자인 왕허는 베이징대 첨단컴퓨터연구센터 조교수고, 회사는 설립 1년 6개월 만에 12억 위안(약 2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니트리: 최초 기록 보유한 ‘국가대표’
중국 대표 로봇 기업들의 제품도 젠슨 황의 선택을 받았다. 유니트리(Unitree·宇树科技)의 H1(2023년 출시)은 중국 최초의 ‘달릴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자체 개발한 고성능 전동 모터와 센서 덕분에 정밀한 동작 수행이 가능해 물류 센터, 공장 등 다양한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제품이다.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5'에서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로봇 'H1'이 방문객과 악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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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트리가 보유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H1과 G1 두 종류인데, H1은 크고 G1은 작다고 보면 된다. H1은 키 180cm, 무게 47kg이고, 가격은 9만 달러(약 1억 3000만원)다. 반면, G1은 키가 127cm에 불과하고 무게도 35kg이다. 2000만원 미만이란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2016년에 설립된 유니트리는 4족 보행 로봇개를 자체 개발해 유명해진 회사이기도 하다. 세계 로봇개 시장 1위 기업으로,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로봇개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 뛰어든 이후, 낮은 가격을 내세우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는 중이다.
◇푸리에: 의료 전문 로봇의 야무진 손끝
의료 전문 로봇을 개발하는 중국 푸리에의 'GR-2'. 작년 9월에 출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푸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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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전문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 푸리에(FOURIER·傅利叶)의 휴머노이드 로봇 GR-2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최적화된 로봇이다. 작년에 출시된 이 로봇은 3kg 미만의 물체를 정확하게 잡고 움직일 수 있고, 원격 조종도 가능하다. 노인 환자가 침대, 화장실, 휠체어에서 일어날 때 간병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키 175cm, 무게 63kg이고, 충전 시 2시간 동안 사용이 가능하다. 2017년 외골격 로봇 업체로 출범한 푸리에는 2023년 1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GR-1′을 선보였고, 최근에는 로봇 양산 시설도 갖추고 있다.
즈위안의 '위안정 A2' 로봇. /즈위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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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위안로봇(Agibot·智元機器人)의 휴머노이드 로봇 위안정 A2는 천재 소년이 만든 로봇으로 유명하다. 즈위안로봇은 중국 최대 IT기업인 화웨이가 인재 확보를 위해 도입한 ‘천재 소년’ 프로젝트 출신인 즈후이쥔이 2022년 설립한 회사다. 키 169cm의 위안정 A2는 대화형 서비스 로봇으로 사람과의 원활한 소통뿐 아니라 지식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정보 전달도 가능하다. 360도를 커버하는 라이다 센서, 카메라가 달려 있고,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섬세한 작업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와 비교해도 기술 격차가 크지 않고 가격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화웨이의 '천재 소년' 프로젝트에 선발됐던 즈후이쥔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만든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즈위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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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로봇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발맞춰 인간 두뇌처럼 사고하는 AI를 접목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2023년 10월 발표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혁신 및 발전을 위한 지도 의견’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 시스템을 구축해 대량 생산에 돌입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서 글로벌 선두 지위를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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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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