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윤석열, 노상원, 김용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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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9사단 작전처의 육사 38기 김용현 소령은 전임자와 다른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매일 아침 참모장을 비롯한 사단 참모들이 지휘통제실에 모여 있다가 사단장이 입장하여 착석하면 작전보좌관이 상황을 보고하면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런데 김 소령은 참모들에게 “사단장께서 방금 출발하셨습니다”라고 알리면서 긴장을 조성한다. 지휘통제실 벙커에서는 사단장실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사단장의 출발을 아는 걸까. 사단장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율하는 특별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거다.
청와대를 경비하는 55경비단 작전장교 시절에도 경호처장을 비롯한 권력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유달리 기민했다. 2024년 11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전 장관을 만나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자 김용현은 그날부터 계엄 선포문, 대국민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작성했다. 12월1일 오전 11시에 윤석열이 김용현에게 “계엄을 준비할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미리 준비해 온 초안을 내밀었다. 권력자와 특별한 사적 관계를 형성하고 권력자에게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스타일은 9사단 작전처의 소령 시절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육사 41기 노상원 소장이 국방정보본부 산하의 777부대장으로 부임하자 부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노 소장은 병사들한테 ‘마음의 편지’, 일명 ‘마편’이라는 걸 자신에게 보내도록 지시하였다. 문제는 이 마편에 간부들의 비리를 소상히 적도록 했다는 데 있다. 사실상 병사들의 투서를 유도한 셈이다. 마편의 내용을 근거로 부대장이 간부들을 잡도리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자 간부들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병사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한마디로 부대가 엉망이 되었다.
노상원은 육사 생도 시절부터 후배들을 영리하게 통제할 줄 알았다. 인간을 통제하려면 인간의 약한 측면을 끄집어내어 그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굴복시켜야 한다. 적어도 노상원은 인간의 한계를 포착하고 이를 자신의 사적인 욕망에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정은 주변의 나쁜 평판으로 퍼져나갔고 인간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했다. 어느 순간인가 동기생들조차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 성추행 사건으로 불명예 전역한 노상원의 최근 근황에 대해 아는 동기생은 거의 없었다. 노상원은 권력에 대한 향수에 젖은 외로운 늑대였다. 김용현이 다시 그를 만난 2024년부터 그 늑대가 다시 우리에서 나왔다.
권력자의 욕망을 파고들어 장악하는 김용현, 하급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지배하는 노상원, 이들은 자신들이 실력자가 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꿈을 꾸었다. 이런 늑대들의 행태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내란의 중요행위 가담자로 구속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조차 김용현에게 노상원을 만나지 말라고 충고했을 정도다. 공소장과 군 인사들의 전언 등을 통해 드러난 이들의 집요한 권력 열망은 윤석열의 망상이 훨훨 타오르도록 만드는 일종의 산화제였다. 이들은 윤석열의 야당과 언론에 대한 적개심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을 포착하여 비상조치권을 결심하도록 촉구하는 방아쇠 역할을 자임했다.
윤석열은 계엄이 선포되기 일주일 전에 정진석 비서실장과 신원식 안보실장을 경질하기로 내심 결심을 내린 상태로 알려져 있다. 용산에서도 이 두명의 실장에 대해 “민원 처리 외에 하는 일이 없다”는 비아냥이 난무하던 터였다. 윤석열에게는 자신의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고 대담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측근이자 동지가 필요했다. 윤석열은 한국 사회를 확 갈아엎는 수준의 파괴적이고 전복적인 사고와 행동, 여기에 목숨을 거는 그런 자들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계엄이 성공하고 나면 비상대권에 의한 과도정부를 구성할 혁명적 인물들이 필요했다. 여기에 김용현과 늑대형 장군들이 부응했다. 단순한 부응이 아니라 적극 가담했다. 그 이후 전개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맹수를 가두기에는 허약한 시스템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미국 트럼프 지지자인 마가(MAGA)를 모방한 듯 부정선거 음모를 외치는 구호(Stop the Steal)와 빨간 모자, 성조기가 나부끼는 탄핵 반대 시위 현장은 늑대가 영웅이 되는 현장이다. 그들의 전복과 파괴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며 가공할 파괴력으로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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