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수십 년간 공들여 만든 한미동맹이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앞에 위태로워졌다.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에 치우친 외교를 펼쳤던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전략 역시 심판대에 섰다.
미국은 트럼프 2기에도 한미동맹은 굳건하다는 원론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트럼프 1기 집권(2019~2021년) 당시 한국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로 동맹관계에 긴장을 초래한 경험이 있어 우리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근공원교(近攻遠交·가까운 곳은 공략하고 먼 곳은 교제를 두터이 한다)’ 전략에 따라 이웃 나라 중국, 일본과 적당한 거리를 둔 외교를 펼쳤다. 그리고 안보 공조의 핵심인 한미동맹 강화에 집중해왔다. 이웃 나라와는 자주 분쟁이 일어나지만 먼 나라와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없고 싸울 일도 없다는 인식은 미국과 거리를 더 가깝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친중 굴욕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느라 미국에 치우친 외교를 펼친 게 우리 경제, 외교적으로 얼마나 많은 실익을 가져다줬는지를 계산해볼 만하다. 2023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ODI)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로 1988년 이후 최고다. 늘어난 한국 기업의 대미투자가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꼽은 트럼프 당선인 앞에 무용지물이 될 경우의 수에도 대비해야 한다. 외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 또는 철회하고, 관세를 부과해 해외 기업들이 알아서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하겠다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전략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에 기대하는 게 많았던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반도체법 수정에 따른 보조금 철회 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2기를 맞아 미국은 더 강력하게 미·중 패권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경제 이해관계로 비롯된 일시적인 마찰이라도 미국에 기댈 게 많은, 그리고 한미동맹에 공들여온 한국 입장에서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 치우친 외교 대신 14억명의 인구가 있는 거대 시장을 가진 중국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실용 외교에 눈을 돌릴 때다. 성장률이 둔화하고는 있지만 중국이란 거대 시장이 가진 가능성은 크다. 트럼프 시대 전 세계를 향한 통상압박을 견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 역시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 극단적 친미 정책을 추구한다고 비판했던 중국 보수 관영 언론조차 최근에는 한국을 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중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우리나라 국민의 중국 방문 비자를 면제하고 있고, 매년 외자판호(외국 게임사의 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 게임 수를 확대하며 국내 게임업계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중국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발해 2016년부터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을 제한하는 한한령을 적용했지만 최근 8년 만에 한국 대중음악 공연이 중국에서 재개됐다.
정부는 패권 경쟁으로 서로를 견제 중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다시 균형을 잡는 시도를 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 한국은 중국을 지렛대 삼을 수 없을까.
박선미 기획취재부장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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