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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7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삼성 리움미술관 새봄 전시…미래 인간은 어떻게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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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리움 지하 전시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자기 생성 영상물 ‘카마타’(2024~현재). 건조한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에 널브러진 사람의 유골 위에서 로봇 기계 장치가 망자를 장사 지내는 듯한 신비스러운 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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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칠레 아타카마사막을 헤매다 탈진해 숨진 나그네가 있었다.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했다. 뜨거운 사막 바닥에 널브러진 채 뼈마다 구멍 숭숭 뚫린 백골이 되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기묘하고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다. 나그네 유골 앞에 돌연 첨단 로봇이 나타난 것이다. 거울 달린 센서를 장착하고 관절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로봇 기계 장치가 구동을 시작했다. 로봇은 주검 주위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팔을 움직여 흙을 뿌리며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장례 의식을 펼친다. 어느덧 사막 지평선에 발간 노을이 물들고, 나그네 유골에도 미세한 그늘이 드리운다.



    이런 내용의 시각적 시퀀스로 기묘한 초현실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대형 영상 설치 작품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지하에 등장했다.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피에르 위그(63)가 지난해부터 현재진행형으로 작업 중인 ‘카마타’란 제목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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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피에르 위그. 올라 린달(Ola Rindal) 촬영. 리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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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시작한 위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 ‘리미널’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은 근대기 이래 인간의 상식과 이성, 지성으로는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인간 바깥의 신비스럽고 괴기스러운 세계의 모습을 미래의 디스토피아 같은 분위기로 전해준다.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란 뜻의 영어 단어 전시 제목에서 짐작하듯, 위그는 디지털 만능 시대 인간 존재의 미래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언자적인 작업들로 강렬한 인상을 심고 있다. 최근 몇년 새 인공지능(AI) 기술이나 해조류, 물고기 등을 활용한 유기적인 오브제 작업 등으로 영상,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을 결합한 작업을 하면서 인간을 넘어선 비인간 존재를 성찰하거나 인간 존재와의 관계를 되짚는 시도들이 그렇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명 미술관 푼타델라도가나에서 열려 세계적인 화제가 된 개인전과 연계된 이번 전시는 비인간 존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담긴 수작들을 다수 보여준다.



    단적인 특징은 주체로 군림하는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2014년 만든 19분짜리 영상물 ‘휴먼 마스크’는 후쿠시마로 표상되는, 재앙을 당해 버려진 일본 한 도시의 식당을 배경으로 설정한다. 이 공간에서 소녀의 얼굴 가면을 쓰고 식당 서빙을 했던 원숭이가 홀로 남아 전에 배운 동작을 되풀이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묵시록적인 상황에서 인간 탈을 쓴 동물의 기묘한 연출을 통해 작가는 존재의 정체성이 사라진 인간의 몸짓,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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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위그가 2014년 만든 19분짜리 영상물 ‘휴먼 마스크’의 한 장면.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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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제목과 같은 제목의 작품 ‘리미널’에는 얼굴 부분이 검게 구멍 뚫린 듯한 이미지의 알몸 여인 형상이 나타난다.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가 포착한 내부 환경 조건과 인공 신경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얼굴 없는 여인은 의미가 불분명한 움직임을 거듭한다. 연구용 암세포가 서식해 분열하는 설치 작품 ‘암세포 변환기’의 이미지 정보는 ‘U움벨트-안리’라는 또 다른 작품으로 보내져 유동하는 이미지를 표출하면서 계속 구동된다. 희귀한 수상생물이 서식하는 수족관 작업을 변색 유리를 통해 보여주면서 비인간 생물 세계의 변화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위그의 작품 기저에 감도는 건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공포, 소외와 고립의 정서다. 낯설고 쓸쓸하고 기괴한 위그의 상상력은 에이아이 시대에 갈수록 위축되고 옹졸해지는 인간 존재의 위기감을 반영하며, 한편으론 인간 존재를 넘어 비인간 세계의 생물 혹은 인간 생물 사이의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과 접근의 욕망을 포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 디지털 문명 시대의 미래적 위기감과 호기심이 위그 작업의 수원이라 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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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작으로 선보였던 피에르 위그의 설치 작품 ‘앞선 삶 이후’. 옛 아이스링크 건물의 콘크리트 바닥을 깨서 파내고 절개한 뒤 벌집을 들여놓고 조류를 배양하는 독특한 얼개의 설치 작업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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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적인 건 이런 상상력이 지구화, 양극화, 기후위기 등 지금 지구와 인간의 현실적 문제에 굳게 착근해 발현된다기보다 우리 일반적인 인식, 상식과 동떨어진 극도의 작위적 상황을 화랑과 패션업체 등의 거대 자본을 끌어들여 설정하고 연출하면서 구현된다는 데 있다. 그의 작품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서사와 정서적 울림이 있지만, 이런 맥락에서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한계성이 설득력과 몰입을 막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7월6일까지.



    지상 1층의 엠(M)2 전시장에서는 9년 만에 전시된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비롯해 마크 로스코와 자코메티, 장욱진과 김종영, 미국 미니멀 팝아트 작가 작품 등으로 꾸린 소장품전도 구경할 수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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