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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아름다운 추억? 우리는 매 순간 기억을 편집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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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으로 풀어낸 기억의 본질… 파편적 사건으로 기록되는 기억

매 순간 재구성하며 새 의미 부여… 강렬한 감정일수록 미화하는 경향

호기심의 발생-위험 회피 경향 등… 외부정보와 뇌의 상호작용도 다뤄

◇기억한다는 착각/차란 란가나스 지음·김승욱 옮김/420쪽·2만2000원·김영사

2016년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 초반부에서 주인공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오른쪽)과 미아(엠마 스톤)이 춤을 추고 있다.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하지만, 영화 끝자락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지난날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책 ‘기억한다는 착각’에선 이런 과도한 과거의 미화를 ‘회고 절정’이라고 부른다.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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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누구나 한 번쯤 방에 들어갔다가 ‘내가 뭘 하려고 했지?’ 하고 멈칫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 참 좋았지”라고 말하곤 하지만, 과연 그 기억이 온전히 사실일까 헷갈리기도 한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심리학·신경과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의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매 순간 재구성된다”고 말한다. 기억은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과거 경험 조각들이 순간순간 다시 짜인다는 것이다.

책은 다양한 신경과학 이론을 활용해 기억의 본질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 나오는 기억에 대한 흥미로운 개념을 유명 영화들과 연관 지어 살펴봤다.

① 왜 방금 전 일을 잊어버릴까=영화 ‘메멘토’(2000년)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겪는 주인공이 단서를 따라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는 이처럼 기억이 끊기는 현상을 “사건의 경계선”이라 부른다. 기억은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 단위로 저장된다. 따라서 한 공간에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이전 사건과의 연결이 약해져 순간적으로 ‘메멘토’처럼 불과 얼마 전의 일을 잊어버린다. 우리가 방금 하려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뇌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이다.

② 왜 호기심이 생길까=영화 ‘인터스텔라’(2014년)에서 아버지 쿠퍼는 우주 탐사를 떠나기 전 딸 머피가 이상한 책장 움직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본다. 이는 호기심과 관련된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다. 예상치 못한 정보를 접했을 때 뇌가 즉각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으로 ‘정향 반응’이라 부른다. 또 우리의 뇌는 정보가 부족할 때 호기심을 자극하고, 도파민 분비를 유도해 학습을 촉진한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 느끼는 쾌감의 원리이기도 하다.

③ 왜 젊은 시절을 자주 떠올릴까=영화 ‘라라랜드’(2016년)의 결말에선 주인공들이 서로의 꿈을 좇아 다른 길을 걷게 된 뒤 과거의 선택을 돌이켜 보며 대체로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인간이 과거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회상하는 경향을 “회고 절정”이라 부른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경험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된다. 이 시기에 감정적으로 강렬한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④ 왜 잘못된 정보에 쉽게 속을까=영화 ‘돈 룩 업’(2021년)은 현대 사회에서 허위 정보가 어떻게 퍼지는지를 풍자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혜성 충돌을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에 휘둘려 무시한다. 저자는 이처럼 부정적인 정보가 긍정적인 정보보다 더 빠르게 확산하는 이유를 ‘부정성 편향’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기억한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하는지를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과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기억과 관련된 개념을 쉬운 언어로 풀어쓴 것도 장점이다. 도전과 실수에서 배운 것을 더 잘 기억하는 ‘실수 기반 학습’, 스스로 배운 것을 시험 치르는 무의식적 작용인 ‘수면의 효과’ 등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좋은 다양한 기억의 메커니즘을 일별해 볼 수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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