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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효능 검사 해보자고 했더니… 숙취 해소제 절반 간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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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맹물 음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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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숙취 해소제 제조사 절반 이상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요구한 ‘숙취 효능 시험’을 포기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효능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내에서도 “시중에 판매되는 숙취 해소제 절반 이상이 효과가 없는 ‘맹물 음료’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란 말이 돈다. 정부 점검이 끝나는 올 6월까지 ‘효과 없음’ 판정을 받는 숙취 해소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24일 식약처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숙취 해소제 제품은 177개였다. 해소제는 음료 형태가 가장 많았고 젤리와 환(둥근 약)도 있었다. 식약처는 올해 초 국내 숙취 해소제 제조사에 “각사의 숙취 해소제가 사람에게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시험한 ‘인체 적용 시험 결과’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시험 결과를 내지 않으면 향후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제품에 쓰지 못한다고 공지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진경


그런데 올 3월 기준, 인체 적용 시험에 응한 숙취 해소제 제품 수는 81개였다. 나머지 96개 제품(전체 54%)은 시험을 포기했다. 식약처는 이 96개 제품을 만드는 회사 대부분을 현장 방문했고 업체들로부터 “앞으로 숙취 해소제를 만들 의향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 관계자는 “시험 결과를 내라는 식약처의 통보만으로 절반 이상의 숙취 해소제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 것”이라며 “효능에 자신이 있었다면 왜 시험을 거부했겠느냐”고 했다. 시중의 숙취 해소제 절반이 사실상 ‘맹물 음료’였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현재 시험을 포기한 상품에 대해선 ‘숙취 해소제’ 라벨을 떼어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편의점·약국에서 많이 파는 메이저 숙취 해소제인 ‘컨디션’ ‘여명’ ‘모닝케어’ ‘상쾌환’ ‘레디큐’ 등은 인체 적용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정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체 적용 시험에 응한 81개 숙취 해소제 중에서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효능이 입증된 제품에 한해서만 계속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인체 적용 시험은 전국 19개 종합 병원에서 이뤄졌다. 식약처의 권고 규정에 따르면, 각 제조사는 20~40대 남녀 시험 참가자를 저녁에 병원으로 모은 뒤 저녁을 제공해야 한다. 저녁 식사 2시간 뒤에 자사 숙취 해소제를 섭취하게 하고 알코올 90g(소주 한 병 반)을 30분 안에 마시게 한다. 이 시간에 안주는 새우깡 20개 정도로 최소한만 허용한다. 첫 잔을 마시고 난 뒤 바로 채혈을 하고, 이후 15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총 8차례 채혈을 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와 아세트알데히드(숙취 유발 성분) 농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졌을 경우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술이 센 ‘20대 남성’ 위주로 시험을 하거나 술은 적게, 물은 많이 먹게 하는 등의 꼼수를 쓴 사실이 적발되면 마찬가지로 숙취 해소제라는 문구를 박탈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오는 6월까지 81개 제품에 대한 인체 시험 결과서를 모두 검토해 적합 여부 판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했다. 추가로 탈락하는 ‘맹물 해소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탈락한 업체가 숙취 해소제라는 말 대신 ‘숙취 해결’ ‘숙취엔 ΟΟΟ(상품명)’라는 비슷한 말을 쓰는 것도 단속할 방침이다.

2023년 국내 숙취 해소제 판매액은 3473억원으로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2년 전인 2021년(2243억원)에 비해선 1200억원 늘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 숙취 해소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식약처는 지난 2020년 과학적 근거를 갖춰야만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후 4년 남짓한 유예 기간을 준 뒤 올 하반기부터는 숙취 해소제라는 광고 문구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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