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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 이후의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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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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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최근에 나는 일주일 남짓 미국을 여행했다. 몇군데에서 발표와 학술회의가 있어 서안부터 중서부를 거쳐서 동부의 뉴욕까지 횡단하며 가는 곳마다 고등교육 종사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주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 여행은 이제 불안하다고 나를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굳이 간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지금 세계의 지정학·지경학을 급변시키는 미국의 ‘트럼프주의’란 무엇인지, 미국 현지에서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현지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목표했던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여행의 끝에 나는 트럼프주의의 함의와 맥락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다.



현지인들에게 트럼프주의란 무엇을 의미할까? 일차적으로 공공부문의 엄청난 ‘축소’부터 실감된다. 수습 공무원(약 22만명)을 포함하여 이미 약 30만명의 공무원이 실직을 당한다. 연방 공무원들이 240만명에 불과한 나라에서 이건 상당한 숫자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에 이어 이젠 교육부까지 아예 송두리째 철폐된다. 항공 안전 요원, 원전 안전 점검 요원, 국립공원 요원 등이 무더기로 잘린다. 레이건이나 부시도 신자유주의자였지만, 이와 같은 행정 국가의 대규모 축소는 전후 미국사에서는 처음이다. 행정 국가와 함께 교육, 연구, 개발 부문도 전대미문의 대규모 축소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대학에서의 신규 임용 동결, 연구비 전액 삭감 등은, 내가 만난 수많은 재미 동료들이 토로한 목전의 아픈 현실이었다.



국가의 내부적 축소와 함께 외부를 향한 미국의 패권 역시 엄청난 ‘살 빼기’ 중이다.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대외적인 ‘연성 권력’(소프트 파워)의 핵심을 이루었던 미국의 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은 이제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여태까지 성역으로 여겨졌던 미군에서도 장성들의 10%가량이 감축되고, 감원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던 중앙정보국(CIA)까지도 해고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는 ‘강성 권력’(군·첩보기관)도 ‘연성 권력’(대외 선전 기관)도 스스로 구조조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행정 국가는 규모는 줄어들지만 그 억압성은 오히려 몇배나 더 심해지고 있다. 제1차 적색 공포(1919∼1920년) 시대처럼, 미국의 비공식적 국시를 위반하여 팔레스타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외국 국적자들이 체포·퇴거를 당한다. 1960년대 이후에 발전되어온 약자 우대, 역차별 정책 등은 이제 그 족적을 감춘다. 심지어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받는 이들에게는 ‘불평등’이나 ‘소수자’ 같은 이 시대의 금칙어들이 논문 제목에 들어가기만 해도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축소된 행정 국가의 국경은 훨씬 더 폐쇄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수입 관세도 오르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인적 왕래도 힘들어졌다. 미등록 노동자들이 무자비하게 쫓겨나는가 하면, 이제 정부는 40여개국 국민들에게 전면적 내지 부분적 미국 여행 금지 처분을 내리려 한다. 한때 이민자들의 국가였던 미국은, 이제 가장 심각한 ‘반이민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위와 같은 정책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적어도 부분적인 과거로의 회귀라고 할 만하다. 이 과거란 뉴딜이라는 초보적 복지 국가, 자본에 대한 통제 이전의 시대, 즉 1930년대 이전의 미국이다. 그때 그 미국은 부유한 나라 중에서는 공공부문이 가장 적고 세율 역시 매우 낮았다. 연방 국가는 교육·연구 등을 그다지 지원하지 않았다. 1920년대의 미국은 이미 경제 대국이었지만, 대외 정책은 주로 미국의 무역·투자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치 정도였다. 무역·투자는 중시됐지만, 1920년대의 미국은 동시에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국가였다. 1922년에 정한 수입 관세는 평균 40%였으며 1924년의 이민법은 아시아인의 이민을 거의 전면 금지하고 동남부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을 엄격히 제한했다. 동시에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탄압 역시 수준급이었다. 급진적 사회주의자 등은 법무부 수사국(오늘날의 FBI)의 주된 사냥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과거로의 부분적 회귀는 어떻게 해서 미국 국가 정책의 실질적인 골격이 될 수 있었을까?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성격과 직결돼 있다. 한국의 역사 대부분은 ‘관’이 자본 위에 군림했던 시대였고, 중국·러시아의 경우 자본에 대한 관료집단의 절대적 우위가 정상이다. 이와 정반대로 미국의 국가란 정확히 자본가들의 도구에 불과하다. 미국 국가의 존재 이유는 대외적 패권의 유지보다 일차적으로 자본의 이윤율 유지다. 만약 개방적 무역을 그 전제 조건으로 했던 미국의 패권이 더 이상 미국 자본의 이윤율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해가 된다고 인식되면,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얼마든지 그런 패권 질서에 구조조정의 메스를 댈 수 있다. 만약 공무원 감원을 통한 국고 지출 감축, 그리고 국채 이자 지급액 감소가 장기적으로 자본의 이윤과 직결된 기축통화로서의 미 달러의 지위 유지에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군과 중앙정보국도 감원 대상이 된다. 결국 중국 등 신흥 국가와의 기술·생산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미국은 보호주의·고립주의와 작은 정부 시대로의 회귀를 통해 자본 이윤율의 위기를 모면하려 하는 동시에, 심화되어가는 불평등이 초래할 수 있는 급진화를 반대자에 대한 탄압을 통해 ‘선제공격’하는 셈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한번 백인 자본 엘리트가 배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보호주의 경제, 고립주의 사회로 만들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영화(榮華)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관세 장벽은 인플레부터 심화시킬 것이고, 교육과 연구, 개발 지원의 축소는 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쟁력을 더욱더 약화시킬 것이다. 안전 요원 등 공무원의 대책 없는 감원은 미국을 더더욱 후진적이고 위험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한데 트럼프가 실패하고 트럼프주의자들이 권력을 잃어도, 과거와 같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는 이미 복구가 불가능할 것이다. 대한민국도 궁극적으로 ‘미국 이후의 세계’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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