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착취라며 근거 없이 갈등 부추겨
분열에서 정치적 이득 얻으려는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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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애순(아이유)과 관식(박보검).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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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속았수다’가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위로의 말인지 몰랐다. 여태 ‘완전 속았다’는 뜻이라 여겼다. 멜로라더니 속았다.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시대가 안긴 가난과 삶이 준 고난을 보는 게 고달파서는 아니다. 애순과 관식의 얼굴에서 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리고, 금명에게선 나와 내 형제의 그림자가 겹쳤다.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도 ‘퉁’이 되는, 세상 불공평한 사이가 우리”라는 부모를 향한 금명의 독백에 먹먹해진다.
감수성이 돋아나는 걸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정치권도 봄 대선 맞이에 분주하다. 주요 대선 주자들이 뒤늦게 18년 만에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연금법 개정안을 원점으로 되돌리자며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니 확연하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전 대표 등에 연금개혁 저지를 위한 회동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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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바로 연금을 받는 86세대는 꿀을 빨고, 올라간 돈을 수십 년 동안 내야 연금을 받는 청년 세대는 독박을 쓰는 것”이라며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를 갈라 친다. 이미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미래 세대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결정”, “연금 야합”이라는 거친 말까지 쏟아 내며 청년 세대 분노를 자극한다. 무책임한 선동이자 세대 갈등에 편승해 지지율을 높여보겠다는 계산만 앞선 행보다.
청년 세대 부담이 느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청년 세대 ‘독박’ ‘학대’ ‘착취’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월소득(309만 원)을 받는 직장인이 내년에 신규 가입해 40년간 보험료를 내고 25년간 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개정 전과 비교해 결과적으로 536만 원 손해 본다. 높아진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적용하면 부담 총액은 2,706만 원 늘고, 연금 총액은 2,170만 원 늘어서다. 구체적으로 개인이 내는 순 납부 총액은 9,356만 원이다. 인상된 보험료율 13%의 절반은 사업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총 연금 수령액은 3억1,489만 원이다.
보험료율은 8년간 단계적으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즉각 높여 세대 간 공정성이 훼손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소득대체율 43%는 내년 이후 보험료를 내는 기간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추가로 얻는 혜택은 크지 않다. 군 복무·출산 크레디트 확대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청년 세대가 받는 혜택은 더 커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왼쪽)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오른쪽). 윤석열 페이스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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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때도 윤석열 대통령 승리 방정식이라던 ‘세대 포위론’ 전략에 따라 세대 갈등을 부추겼다. 보수 성향의 ‘이대남’(20대 남자)을 끌어안겠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로 젠더 갈등을 촉발시켰고, ‘멸공 챌린지’라는 색깔론으로 이념 갈등까지 부추겼다. 정치 혐오와 국민 분열이 극단화된 대가를 우리 사회는 두고두고 치르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가 지혜를 모아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현실을 직시하지도 미래를 향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그저 세대 갈등에 기생하려는 정치를 퇴출시켜야 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는 ‘폭삭 속았수다’라며 상대를 인정해주는 정치다. 신물 나는 '각자도생' 정치에 더는 속지 말자.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도 ‘퉁’이 되는 '세상 불공평한' 세상을 보고 싶다.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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