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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역할’ 침엽수가 숲의 절반… 소방차 다닐 산길은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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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산불 피해 키운 두 가지

영남 산불이 사상 최악으로 번진 배경에는 강한 바람과 비가 적게 오는 봄철 건조기라는 기상 여건 외에도 불에 잘 타는 침엽수림과 ‘임도(林道)’ 부족이라는 우리나라 산림의 구조적 문제점도 있다.

침엽수는 기름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산불이 발생하면 불쏘시개나 화약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침엽수인 소나무 송진의 주요 구성 성분은 불에 타기 쉬운 탄화수소인 ‘테르펜’이다. 송진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횃불의 연료로 사용됐을 정도로 인화성이 높다.

또 산불 진화용 인력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산길인 임도가 제대로 조성됐다면 진화 작업이 수월했겠지만, 울창한 숲 경관을 해친다며 환경 단체와 산주들이 반대했던 게 대형 산불로 돌아왔다.

◇안동과 의성은 침엽수림이 절반 이상

27일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산림(629만8134ha)에서 침엽수림이 차지하는 비율은 36.9%였다. 침엽수림은 침엽수가 차지한 면적이 75% 이상인 숲을 뜻한다. 한국은 단단한 화강암 지반을 둔 곳이 많아, 예전부터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잘 자랐다. 침엽수는 뿌리가 넓게 퍼지며 땅을 붙잡고 있는 반면, 활엽수는 뿌리가 깊게 뿌리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과 안동시도 지반이 단단한 곳들로, 침엽수가 많이 자란다. 산림청 관계자는 “경북 산림 일대를 가보면 흙을 3~4cm만 파내도 단단한 지반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안동시의 침엽수림 비율은 52.9%로 전국 평균보다 16%포인트나 높고, 의성군의 침엽수림 비율도 51.4%나 된다.

반면 경남 산청군과 하동군은 침엽수림 비율이 각각 37.6%, 38.8%로 전국 평균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 23일 산불이 발생했다가 이틀 만에 꺼진 충북 옥천군은 침엽수림 비율이 24.1%에 그친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우리나라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번져 나갈 연료를 산에 잔뜩 쌓아 놓은 셈”이라며 “바람과 기후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니, 나무 수종과 밀도 등이라도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울주 두 산불, 임도가 갈랐다

산림 관리 차량이 다니는 임도는 산불이 났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대부분의 산은 헬기로 불을 끈다. 밤에는 헬기가 못 뜬다. 낮이라도 바람·안개 등 날씨가 안 좋으면 마찬가지다. 하지만 임도가 있는 산은 소방차량이 올라갈 수 있다. 사람이 15L 등짐펌프를 메고 1시간을 등반해 도착하는 산불 현장을 소방차는 3000L 물을 싣고 5분 만에 도착한다. 산림청은 임도의 유무에 따라 산불 진화 효율이 5배 차이가 난다고 분석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로부터 1m가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은 1.55㎡씩 증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은 임도가 적다는 것이다. 산 1ha당 4.1m 수준으로, 독일(54m)이나 일본(24.1m)보다 현저히 적다. 최대 피해 지역인 경북 의성군의 산불 임도는 다 합쳐 봐야 710m일 정도로 턱없이 적다.

이번 산불 피해를 입은 울주군의 경우 임도 유무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폭 3m짜리 임도가 있는 화장산에서는 이틀 전 산불이 발생했을 때 헬기가 뜨지 못하는 밤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소방 차량 92대와 소방 대원 1240명이 밤새 물을 뿌려댔다. 그 결과 화재 발생 29시간 만에 ‘완전 진화’를 선언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울주군에 있는 대운산은 임도가 없는 탓에 엿새째 산불 진화에 애를 먹었다. 낮에는 헬기로 물을 뿌리지만 헬기가 못 뜨는 밤이면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운산 일대 산불은 불이 난 지 128시간 만에야 진화에 성공했다.

앞서 2023년 경남 합천과 하동에 산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도가 있는 합천은 야간 산불 진화율이 82%였지만, 임도가 없는 하동은 7%에 불과했다.

산이 많은 지역 지자체들은 임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이 사유지인 경우 산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환경 단체의 반대도 난관”이라고 했다.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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