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교총, 기독교 140돌 군산·강경·공주 탐방
선교사 전킨·드루, 학교·병원등 세워 근대화
우리암 영명학교 설립, 사애리시 ‘유관순 스승’
24일 방문한 전북 군산시 수덕산의 전킨·드루 선교사 군산 첫 선교지 기념비 [한국교회총연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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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멀 전씨다. 내가 죽으면 궁멀에 묻어 달라.”
1895년 3월 전북 군산에 도착해 첫 선교를 시작한 윌리엄 전킨(1865~1908·한국명 전위렴) 선교사는 세 아들을 풍토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군산 선교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평생 간직했다. 미국인이지만 조선에 온 후로는 자신이 구암교회를 세운 궁멀(구암동)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는 전주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군산 구암동에 묻혔다.
전킨은 알렉산드로 드루(1859∼1926·유대모) 선교사와 함께 초가집 2채를 50달러에 매입해 교회와 진료소로 사용했다. 목사인 전킨은 교회를 운영하고, 의사인 드루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군산제일고 졸업생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이날 학교에서 “선교사들이 가르친 자유, 인권, 사랑, 박애의 가치가 학생들 스스로를 각성시키고 민족운동이 일어나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킨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인 서종표 군산 중동교회 목사는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6000명이고 그중 600명이 이 땅에 묻혔다”며 “이분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희생했는데 우리는 그분들을 기억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해 이름만이라도 남기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25일 방문한 충남 공주에선 1906년 프랭크 윌리엄스(1883∼1962·우리암) 선교사가 설립한 공주영명학교가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몸 바치는 애국자를 교육 목표로 삼았다. 조선이 빨리 독립하기를 바라며 아들 조지 윌리엄스의 한국 이름을 ‘우광복’으로 짓기도 했다.
‘사애리시’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린 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는 영명여학교를 세워 소녀들을 가르쳤다. 남편이 충남에서 복음을 전하다 세상을 떠났음에도 1940년 일제의 선교사 강제 추방 때까지 38년이나 조선에 머물며 교육에 헌신했다.
한편 한국교회총연합이 마련한 이번 근대 문화유산 탐방은 한국 기독교 140주년을 맞아 이뤄졌다. 군산·강경·공주=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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