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05 (토)

인터넷 친구 만나러 갔다 실종된 소녀들… '대만판 N번방'을 고발한다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책과 세상]
우샤오러 '죽음의 로그인'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창 귀퉁이에 뜬 성인물 광고를 클릭했다. 그날따라 마음에 걸렸던 건 광고 속 여성이 아무리 봐도 어렸기 때문이다. 영상을 끝까지 봤다. 백인 남성이 남아시아 국가에서 찍은 것이었다. 16세도 안 된 아이는 카메라 렌즈를 피해 숨었다. 영상에는 이런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더 올려줘." "비행 편을 찾아봤어. 내가 거기 가게 되면 가이드 좀 해줘." 보고 싶던 댓글은 단 하나였다. "이건 범죄잖아. 미친,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 거야? 이런 걸 보면서 자위할 순 없어."

대만 소설가 우샤오러(36)는 그날 이후 장편소설 '죽음의 로그인'을 썼다. 그는 미성년 성착취 영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왜 이토록 당연하게 타인의 고통을 방관할까? 심지어 이런 데서 성적 쾌감을 얻으려 한다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니." 책이 2021년 대만에서 처음 출간된 후 이른바 '대만판 N번방'이 적발됐다.

가학적 성착취물 타깃 된 취약한 소녀들


'죽음의 로그인'에는 '그들'의 타깃이 된 젊은 여성 팡루이안이 나온다. 가정과 학교에서 내몰려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취약한 여성. 어리고 외로워서 누가 자기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손쉽게 타인의 먹잇감이 된다. 루이안은 그가 철썩같이 믿는 남자친구 궈리눙의 "말하자면 사냥감"이었다.
한국일보

죽음의 로그인·우샤오러 지음·강초아 옮김·위즈덤하우스 발행·480쪽·1만8,500원


궈리눙은 '학교' 소속이다. 물리적 교육기관인 학교가 아니라 인터넷 공간을 말한다. 학교 이용자인 '교우'의 추천을 받아야만 가입 가능하다. 학교에 제출하는 '보고'는 폭력적이고, 변태적이고, 선정적일수록, 인간의 내면을 왜곡하는 내용일수록 "교육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학교 사이트는 '강의실'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인터넷 공간들로 나눠 있는데 입장료가 수백만 원이다.

강의실마다 입장 가능한 등급도 따로 있다. 승급하려면 강의를 듣는 것뿐 아니라 직접 한두 개 방을 열어 '교재'를 다른 교우에게 제공해야 한다. 교재로 공유되는 사진이나 영상은 짐작하는 그대로거나 상상을 뛰어넘는 가학적 성착취물. 학교에 잠입 취재한 기자 우수옌의 입을 통해 소설이 그리는 학교는 악랄한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다. 한국의 N번방, 박사방과 같다.

인터넷 친구를 만나러 간 소녀들이 실종됐다


루이안이 위험에 처한 것을 처음 눈치채고 도우려는 이는 천신한이다. 둘은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MMORPG)인 '위드그라실'을 하다 만난 '게임 친구'다. 루이안과 신한은 게임 속 아이디인 시리와 둥촨으로서 '현실 친구'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을 터놓기도 한다. 궈리눙이 게임을 더는 못하게 하자 루이안은 작별 인사와 함께 대학생인 척 속인 데 대해 사과할 겸 신한을 현실에서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정상궤도'에서 이탈했고, 현실에는 없는 것들을 게임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집안의 자랑거리였던 명문대생 신한은 스무 살 때 당한 교통사고 이후 가족의 수치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죽음의 시그널 '검은 안개'를 보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그는 사람을 피하게 된다. 믿고 따르던 직장 상사의 몸에서 검은 안개를 발견하고도 그를 살리지 못한다. 이 일을 계기로 회사까지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한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직책이 있어야 한다는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신한은 사회부적응자이자 잠재적 '외로운 늑대'일 뿐이다. 하지만 신한은 게임 안에서 편해진다. 소속감과 인정을 얻는다. 어쩌면 "세상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를 진짜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아 현실 밖으로 떠밀렸던 것인지 모른다.

신한은 루이안에게서 죽음의 시그널을 본다. 이어 루이안은 남자친구와 살겠다며 잠적한다. 뉴스에서는 어린 여자애들이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사라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신한은 루이안을 구하려 행동에 나선다.

대만을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 우샤오러. Copyright©Mirror Fiction In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만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의 고발


소설은 인터넷 친구를 쉽게 믿는 여자 아이들을 탓하거나 인터넷 공간이 위험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멈출 수 없다고 역설한다.

"지금은 포르노 콘텐츠를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는데도 왜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디지털 성 착취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저자는 답을 찾아나간다. "가해자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게 만들어야 해요. 앞서 댓글처럼 '신경 쓰는' 사람이 더 늘어야 합니다."

대만을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인 저자는 앞서 성폭력 피해자의 진실성을 파고든 소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로 호평을 받았다. 대만의 입시 열풍을 다룬 데뷔작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는 2018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됐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