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외교전략 흔들…경제실리 못챙기고 유럽내 리더십에도 의구심
멜로니 총리 |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유럽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원대한 구상에 금이 가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유럽 정상 중 유일하게 참석할 정도로 돈독한 친분을 과시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간 가교 역할을 하며 전 세계 외교 무대에서 '핵심 인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됐다.
트럼프는 물론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각별한 사이인 멜로니 총리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선정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도 꼽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여파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멜로니 총리는 두 진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3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약 33억달러(약 48조원) 규모의 이탈리아 자동차 대미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에니(Eni)가 베네수엘라에서 가스 판매 대금을 받을 수 있는 허가를 취소했다.
경제적 실리를 챙기지 못한 멜로니 총리는 미국과 유럽 간 가교 역할을 하며 유럽 정치의 중심에 서겠다는 개인적인 야심도 무산될 처지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미국과 유럽 어느 쪽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침묵을 유지해왔다. 답변이 필요한 경우에도 서방의 단결을 강조하는 원론적인 발언에 그쳐왔다.
지난 1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방문해 트럼프와 회동한 멜로니 |
국내적으로도 그의 정치적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연립정부 내 강경 우파 정당 동맹(Lega)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공식 외교라인을 건너뛰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직접 접촉하는 등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연정의 다른 한 축인 안토니오 타야니 외무장관이 반발하는 등 연정 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활용해 경제적, 외교적 이익을 얻으면서도 유럽과의 협력을 유지해 이탈리아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유럽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멜로니 총리가 기대했던 '가교'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유럽과의 공조를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루이스귀도카를리대 정치학과장인 조반니 오르시나 교수는 "멜로니 총리는 강요받지 않는 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려 하며, 강요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서양 동맹이 더욱 긴장 상태에 빠지고 미국과 유럽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러한 입장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멜로니 총리가 트럼프에 구애한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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