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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후각과 함께 인류가 잃어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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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향기 나는 스크린

일본 도쿄농업기술대 연구진이 향기 나는 'LCD 스크린(명칭 Smell-O-Vision TV)'을 시연하고 있다. phy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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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유기체의 감각 중 가장 천박한 감각으로 후각을 꼽았다는 말도 있다지만, 아무래도 후각은 인간이 지닌 다섯 감각 가운데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다. 인간의 코는 냄새 자극에 금세 둔감해져 향기로 얻게 되는 순간의 좋은 느낌은 이내 다른 감각 자극-주로 시각-에 압도되는 반면 나쁜 냄새로 인한 불쾌감은 그 자체로 기억에 각인된다.

다른 동물들처럼 냄새로 먹잇감을 찾고 포식자를 경계했을 호미닌이 진화를 거듭하며 맨 먼저 ‘포기’한 감각도 후각이었다. 그 흔적은 개체 발생 과정에서도 재현된다. 영아의 시각은 생후 6개월은 지나야 생기지만 후각은 처음부터 예민해서 냄새로 어미를 인지한다. 하지만 그 시절은 아주 짧다. 흔히 후각을 ‘원시적-원초적 감각’이라 부르는 까닭이 그것이다.

오감 가운데 과학적으로 가장 덜 연구된 감각도 후각이어서, 인류는 냄새 입자를 감지하는 후각 수용체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어떤 수용체가 어떤 자극에 반응하는지 아직 온전히 알지 못한다. 후각 신경이 대뇌 변연계(감정, 기억)와 얽혀 있어 냄새와 기억이 얽혀 있고,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 등의 발병과 전개가 후각의 성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도 극히 최근에야 알게 됐다. 후각의 퇴화와 더불어 인류는 뜻밖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예컨대 TV나 영화처럼 향기가 '거의' 사라진 세상.

2013년 4월 1일 일본 도쿄농업기술대 연구진이 ‘향기 나는 TV’를 세상에 선뵀다. 디스플레이 네 귀퉁이에 향기 입자를 담은 카트리지와 소형 팬을 장착, 팬의 강도(바람 세기)를 정교하게 조절해 화면의 특정 장면 특정 부위에서 냄새가 나도록 고안한 장치였다. 언젠가 모든 냄새 입자의 성분과 구성비가 완벽하게 밝혀지고 냄새의 합성도 용이해진다면, 인류는 TV나 영화에서, 특히 과자나 치킨, 화장품 광고에서 냄새의 '유혹'까지 견뎌야 할 것이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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