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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AI 칩 ‘HBM4’ 패권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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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삼성이냐 ‘HBM 1위’ 하이닉스냐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6세대)가 올해 반도체 업계 승부처로 떠오른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다. 이번에도 SK하이닉스가 ‘선공’을 날려 삼성전자는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다. 삼성전자가 주주들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인 지난 3월 19일 주주총회날,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 HBM4 12단 샘플 공급 소식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고부가가치 HBM 매출 비중이 급증하면서 삼성전자는 30년간 지켜온 D램 매출 점유율 1위 자리를 올 1분기 사상 처음 SK하이닉스에 내줄 가능성이 커졌다. 메모리 2강(삼성전자·SK하이닉스) 간 HBM 패권 경쟁이 여느 때보다 달아오르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하이닉스, HBM4 기선 제압

삼성, 주총서 ‘분골쇄신’ 의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장 주류인 HBM3E(5세대) 주도권 다툼이 치열한 가운데 차세대 승부처로 HBM4(6세대)가 떠올랐다. 최근 엔비디아는 연례행사 ‘GTC 2025’에서 내년 출시 예정인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에 288GB 용량의 HBM4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HBM4는 HBM3E 뒤를 잇는 6세대 제품이다. 루빈은 엔비디아 AI 칩 중 처음 HBM4가 탑재되는 제품으로, HBM4 시대를 열 제품으로 주목받는다. 루빈에는 6세대 HBM4 8개가 탑재되므로, 루빈에 대한 HBM4 납품 여부·규모에 따라 HBM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 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027년 ‘루빈 울트라’, 2028년 ‘파인먼’을 각각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루빈 울트라에는 HBM4E(7세대), 파인먼에는 HBM5(8세대) 탑재가 예상된다.

HBM4 시대 서막이 열리면서 HBM 2라운드 경쟁도 후반부로 접어들었단 평가다. HBM은 적층 난도에 따라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돼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4세대까지를 HBM 1라운드로 본다. 1라운드에서는 SK하이닉스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데 이견이 없다. 2라운드는 5세대 HBM3E(8단·12단 등)부터 6세대 HBM4 이후를 아우른다.

이번에도 ‘HBM 세계 1위’ SK하이닉스가 기선 제압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신제품 발표날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에 36GB(기가바이트) HBM4 12단 샘플을 제공한다”는 소식을 깜짝 발표했다. GTC 기간 엔비디아 2인자로 불리는 제프 피셔 수석부사장이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4 샘플을 축하합니다!(Congrats on HBM4 Sample!)”는 메시지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

공교롭게도 이 소식은 삼성전자가 주총에서 분골쇄신 의지를 다지는 중 전해졌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은 주총에서 “AI 경쟁 시대에 HBM이 대표적인 부품인데, 그 시장 트렌드를 조금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며 “HBM4 등 차세대 HBM에서는 이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계획대로 차근차근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기술 초격차 평판 회복이 갈급한 삼성 입장에선 HBM3E보단 HBM4 양산 성공이 숙원 과제다. 이미 SK하이닉스가 HBM3E 12단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선 삼성이 엔비디아 HBM 공급망에 진입하더라도 손익 측면에선 유의미한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단 시각이 우세하다. 엔비디아 물량 대부분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가 이미 ‘완판’을 공언할 만큼 HBM3E 시장은 수요 공급이 타이트한 상황이다.

특히, AI 반도체 산업에선 불연속적 기술 발전으로 기존 기술과 제품 수명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추세다. HBM과 GPU 역시 지속적으로 신규 칩이 시장에 나오면서 기존 칩 감가상각 속도가 더 빨라진다. HBM3E보다 HBM4 양산을 서둘러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선단 공정에서 HBM4 양산 초기 수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짧은 수명 주기로 손익 변동성도 확대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를 납품하더라도 경쟁사들이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수혜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삼성 입장에서 HBM4 양산 성공이 여느 때보다 갈급한 이유가 또 있다. 올 1분기 30년간 지켜온 D램 매출 점유율 1위 자리를 사상 처음 SK하이닉스에 내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 지배력을 키우며 삼성전자와 D램 매출 격차가 점차 줄더니 올 1분기엔 아예 뒤집힐 처지가 됐다. 다올투자증권과 IBK투자증권은 올 1분기 SK하이닉스 D램 매출이 삼성전자를 2조7000억원가량 앞설 것으로 봤다. HBM 매출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의 1분기 D램 평균 가격이 삼성전자보다 20% 이상 높을 것이란 전망이다.

산업계에서 기업 간 지위 역전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여러 실증연구에 따르면, ‘조직 지위(Status)’는 시장 참여자 ‘인식(Perception)’을 기반으로 형성되므로, 다년간 축적된 지위 체계는 실제 품질 변화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변화하지 않으며 안정적인 속성을 보인다. HBM이라는 ‘신생 카테고리’에서 SK하이닉스가 1위를 질주하면서 재평가 계기로 작용하고 있단 분석이다. 매출 점유율까지 역전되면 삼성이 가진 핵심 무형자산인 ‘D램 1위’ 정체성도 훼손이 불가피하다. D램 주도권을 경쟁사에 완전히 내줬단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삼성 DS부문은 HBM에 특화한 선단공정 ‘1c’ D램 양산에 자원을 쏟아붓는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 순으로 개발되며 1c는 6세대를 말한다. 1c에 가까울수록 공정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삼성전자는 1b 공정부터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밀리더니 1c(6세대)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세계 최초 타이틀마저 내줬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1b 공정을 중심으로 HBM 안정적 양산에 주력했으나 수율과 발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 DS부문은 SK하이닉스에 한 세대 앞서 평택 제4캠퍼스(P4)를 중심으로 HBM4부터 1c 공정을 활용해 ‘역전승’을 노린다. 전영현 부회장이 평택 캠퍼스를 중심으로 공정 설계 등 주요 엔지니어를 집중 배치해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수율과 생산성을 동시에 고려해 양산성 검증 강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의구심도 적지 않다. 1c D램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간 SK하이닉스는 HBM4에는 1c 공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수율과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산업계에선 1b에서 1c로 ‘퀀텀 점프’를 노리는 삼성전자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제프 피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부문 수석부사장이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간)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 마련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4 샘플을 축하합니다!(Congrats on HBM4 Sample!)”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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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적층 경쟁도 심화

삼성전자, 1c 공정에 사활

파운드리 역량도 관전 포인트다. HBM 특성상 세대가 거듭될수록 파운드리와 긴밀한 협업이 필수다.

특히 6세대 HBM4는 5세대와 비교해 공정 난도가 비교 불가다. HBM 패키지 최하단에는 ‘베이스 다이(Base Die)’가 배치된다. 베이스 다이는 GPU와 연결돼 HBM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버퍼 다이’ 혹은 ‘로직 다이’라고도 한다. HBM은 베이스 다이 위에 D램 단품 칩 ‘코어 다이(Core Die)’를 쌓아 올린 뒤 이를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로 수직 연결해 만든다. 이전 세대보다 월등한 고속·고용량 성능을 구현하려면 베이스 다이가 기존 HBM처럼 단순히 D램 칩과 GPU를 연결하는 역할을 넘어 연산 등 시스템반도체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이런 베이스 다이는 기존 D램 공정으로는 제작이 어렵다. HBM 세대가 거듭될수록 파운드리·패키징 영향력이 커진단 의미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3E까지는 자체 D램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었지만, 6세대 HBM4부터 대만 TSMC 초미세 선단 공정을 활용한다. 당초 삼성전자는 3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해 HBM 제작부터 패키징까지 ‘턴키 수주(일괄 제공·Turn Key)’를 늘릴 계획이었지만, 산업계와 시장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한때 삼성전자가 TSMC와 협력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이 카드는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새로운 적층 기술도 관전 포인트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에서 D램을 적층할 때 비전도성 접착 필름을 이용해 붙이는 ‘첨단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 필름(TC-NCF)’ 기술을 쓴다. SK하이닉스는 칩과 칩 사이를 액체물질로 채워 붙이는 ‘매스리플로-몰디드언더필(MR-MUF)’ 방식을 적용한다.

두 회사 모두 특정 HBM4 제품군부터는 칩과 칩 사이에 범프를 없애고 직접 접합시키는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을 적용할 전망이다. HBM4에는 I/O(데이터 입출력 통로) 개수가 2배로 늘어난다. 비슷한 면적에 2배 많은 I/O를 넣으려면 칩 사이 간격을 더 좁혀야 한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범프 없이 칩과 칩을 접착하고 데이터 통로를 곧바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칩 간격이 좁아지는 만큼 데이터 전송 속도가 높아지고 발열 제어·수율 향상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HBM3E 격차가 적층 방식에서 비롯됐단 지적이 있었던 만큼, HBM4 제품에서는 또 다른 경쟁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HBM3E(5세대)-HBM4(6세대)를 양산하더라도 초기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누리던 만큼의 부가가치를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신중론이 우세하다. 삼성의 본격적인 가세로 5세대 이후 HBM 공급망이 ‘듀얼칩’ 체제로 재편될 경우, 시장 경쟁 심화로 납품 가격 하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D램 여러 개를 쌓아 올려 만드는 HBM에서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D램 칩이 레거시 제품 시장으로 유입돼 공급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미국 클라우드 사업자의 설비 투자가 둔화하면 HBM도 단기 재고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며 “HBM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원료가 되는 D램 칩이 일반 제품 시장으로 유입돼 D램 공급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3호 (2025.04.02~2025.04.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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