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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국물의 추어탕… 사람 냄새에 마음까지 ‘든든’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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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동 남원 추어정

낮에는 추어탕집, 밤에는 백반집

가족부터 직장인까지 발길 줄이어

뻘건 볶음김치와 살짝 데친 두부

부드러움·쫄깃·아삭함 3박자 일품

5가지 이상 기본 반찬들 입맛 돋워

청국장·제육볶음 등 대중적 메뉴도

밤이 되면 유독 빛나는 식당이 있다. 모두가 집에 갈 시간, ‘남원추어정’은 늦은 새벽까지 손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육볶음과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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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동 심야식당

요리사라는 직업은 정말 매력 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또 손님에게 나간 음식에 대한 피드백이 빠르기에 그 결과에 따라 환호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요리는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넘친다. 다만 조금 힘든 점이 있다면 다른 직업보다는 퇴근 시간이 늦는다는 것 정도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동네 음식점들도 간판불이 하나씩 꺼져 간다. 옛날엔 24시간 문을 여는 해장국집이나 새벽 늦게까지 문을 여는 호프집도 많았지만 요즘엔 대부분 오전 1시 전에 문을 닫는다. 저녁 늦게 술을 먹지도 않고 또 집에서도 다양한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상봉동 집 근처에 낮에 항상 손님들이 붐비는 추어탕집 남원추어정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더니 손님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원추어정은 낮에는 아들이 추어탕집으로 운영하고 밤에는 어머니가 백반집으로 운영해 메뉴가 바뀌는 재미있는 가게이다. 중랑역 넘어 영화관에서 조금 더 걸어 내려오는 위치, 메인 상권에서도 조금 거리가 있지만 두 메뉴를 즐길 수 있어 남원추어정은 낮이고 밤이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낮에는 오직 추어탕만 판매한다. 시간이 정해진 점심식사 시간에 맞게 빠르게 나올 수 있는 뚝배기 메뉴인 추어탕은 직장인들에게 안성맞춤인 메뉴다. 점심엔 메뉴가 다양하지 않기에 추어탕에 집중하고자 하는 사장의 의지가 확실히 느껴진다. 남원추어정은 밤에 더 빛이 난다. 8시 이후부터는 추어탕이 아닌 어머니 손맛 가득한 백반 술집으로 탈바꿈한다. 점심, 저녁에는 직장인들과 가족 단위 손님들이었다면 늦은 밤엔 다른 이보다 퇴근이 늦은 자영업자, 혼자 집에 있다 출출한 속을 달래러 나온 사람들, 멀리서 택시 타고 2차를 하러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모여든다. 식당 내부는 다소 밝다. 술집보다는 음식점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연령층은 20대 초반의 젊은 연인부터 60대 어른들까지 다양하다. 메뉴도 된장찌개, 청국장, 제육볶음, 골뱅이무침처럼 대중적이면서도 좋아할 만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

구운 두부를 올린 김치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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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김치의 볶음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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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추어정 백반

늦은 퇴근길 오늘도 들른 가게에 조용히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본다. 사실 그 메뉴판을 보는 건 그저 습관이다. 난 이곳에서는 늘 두부김치만 먹는다. 두부김치와 소주 한 병을 주문하면 어머니 사장님은 번개처럼 반찬들을 내온다. 빈속에 소주 한 잔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 친절함이 느껴진다. 반찬은 정감이 가득하다. 기본적으로 5개 이상의 찬이 나오는데, 술을 한 잔씩 비우다 보면 새로운 찬을 내주시기도 한다. 오늘 반찬상에는 꼬막이 나왔다. 하나하나 껍질을 벗긴 꼬막 위에 양념장이 소복이 얹어져 있다. 꼬막 껍데기를 들고 알맹이를 꺼내 쏙쏙 먹다 보면 두부김치가 나오기 전에 소주 반병이 비워진다. 두부김치가 나왔다. 뻘건 양념이 잘 밴 볶음김치와 데친 두부가 먹음직스럽다. 남원추어정의 두부김치는 두부를 아끼지 않는다. 손두부를 한입 크기로 썰어낸 두부는 별도의 양념 없이 뜨끈한 물에 살짝 데쳐 나온다. 그 하얀 두부 위에 볶음김치, 고기를 얹어 먹어본다면 이곳에서 다른 메뉴를 안 시키는 이유를 바로 알게 된다. 두부의 부드러움, 고기의 쫄깃함, 김치의 아삭함, 고소하고 새콤하고 달달한 모든 맛이 이 두부김치 한입에 들어가 있다.

김치와 고기의 비율은 딱 7대 3이다. 두부김치는 고기가 많다고 다가 아니다. 두부김치 속 고기들은 조연이기 때문이다. 기름과 양념에 코팅돼 번질거리는 볶음김치는 공깃밥을 하나 시켜 밥에 비벼 먹어도 정말 잘 어울린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사해 주는 맛이다. 두부김치 하나에서도 주방장 어머니의 가치관을 느낄 수가 있다. 남원추어정은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혼밥’을 하고 있자면 멀리서 찾아온 단골 한두 팀이 사장과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벽 장사는 몸도 마음도 피곤한 법인데 손님들과 웃고 있는 사장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도 이곳은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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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집

백반집은 우리나라의 대중적이며 대표적인 식당 유형으로, 여러 반찬과 국을 곁들인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백반집의 정확한 시작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한식 문화와 한국의 외식산업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주막 시스템을 백반집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주막은 국밥 말고도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제공해 여행객들과 장사꾼들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중에 당시 한정식 문화인 양반가의 상차림 방식이 대중화하면서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밥상 형식이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 1940년대부터는 주막 외에도 대중식당이 등장하며 서민들에게도 백반 밥상이 보편화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급격한 산업화로 직장인과 노동자들이 빠르고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필요가 커지며 회사 근처 백반집이 유행했다. 또 밥, 국, 기본 반찬을 제공하는 ‘가정식 백반’ 방식이 정착되며 김치찌개, 된장찌개, 생선구이, 계란찜 등의 메뉴가 고정으로 자리 잡았다. 백반집은 이처럼 한국인의 전통적인 식문화인 주막, 한정식집에서 시작돼 산업화와 함께 대중화하면서 현재도 저렴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한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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