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5일 오후 서울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연 ‘승리의날 범시민대행진’ 에서 참석자들이 민주주의 승리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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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상식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그 순간 대학생이던 1990년대 초 어느 날이 떠올랐다. 수업을 가려고 신촌역 밖으로 급하게 걸어 나오고 있는데, 경찰로 추정되는 분이 가방을 낚아채고 검색했다. 그 이후 외출할 때마다 내 가방에 있는 책들을 스스로 검열하곤 했다. 학교 안팎에서 최루탄과 곤봉을 든 전경을 볼 수 있었던 민주주의 초기 모습이었다.
우리의 긴 역사 중 잠시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다시 반납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임했던 미국은 평등의 민주주의를 불평등의 자본주의에 종속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창출하는 새로운 정치경제에 민주주의는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시민 10명 중 3명 이상은 탄핵에 반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태극기 부대’는 그중 소수일 뿐, 탄핵에 반대하는 ‘침묵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고가 지연되면서 경험되는 국내외 환경들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초조함과 무력함을 주었다.
마침내, 문장 하나하나가 명쾌한 헌법재판소의 선고요지를 들으며 우리 민주주의에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전원일치 판결이 감사했다. 정보 과잉의 탈진실 시대에 전원일치 판결을 통해서 무엇이 상식인가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지난 몇달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단단한 돌 같은 것이 아니라 모두의 돌봄과 노력이 필요한 유리 같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소통하며 성찰해야 한다.
상처 난 민주주의를 치료하는 과정에는 커다란 딜레마가 있다. 첫 딜레마는 극단적으로 분열된 사회통합이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비상식적이고 위법하게 이뤄졌던 일들을 날카롭게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계엄의 책임이 대통령 때문이라고 믿는 국민도, 야당 때문에 일어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믿는 이들도 통합의 대상이다. 선고요지에도 밝혔듯, 정치지도자라면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원인 제공 여부를 넘어 불법계엄과 내란 사태는 응당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또한 채 상병 사건, 영부인 관련 사건들, 세관 마약 수사 의혹 등 불편부당성을 위해 마땅히 수사하고 도려내야 하는 일들이 존재한다. 이를 추진할수록 누군가는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을 부추겨 정치 탄압이라 호소할 것이다. 그럴수록 사회통합은 소원해질 수 있다.
여기에 사회대개혁이라는 딜레마가 추가된다. 발전동력은 떨어지고, 시민들은 경쟁과 소외에 허덕이고 있다. 사회대개혁이 시급하다. 하지만 문제를 공감한다고 대안도 공감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대개혁 과정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으나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성과도 없이 분열만 생산할 수 있다. 차기 대통령의 관심이 ‘도려내기’에만 집중되면 사회대개혁은 요원해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긴장 관계를 완화할 사회개혁은 필수적이다.
사회통합, 불편부당성, 사회대개혁의 삼중 딜레마를 어떻게 풀까? 계엄을 무력화한 것이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고 헌법재판소는 적시한 바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그랬듯 시민이었다. 이제 국가가 실패하지 않고, ‘포용’을 증진하기 위해서 지도층과 엘리트들이 응답해야 한다.
국민보다 조직의 ‘배신자’ 낙인을 더 두려워하는 문화부터 폐기하자. 자신과 조직이 몸담고 있는 국가는 서서히 가라앉으며, 언제든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직을 넘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더 많은 김상욱 의원, 임은정 검사, 하은진 교수가 나와야 한다. 또한 국가재정을 우려하는 엘리트층이 먼저 증세를 요구하자. 모든 소득의 일부를 증세하여 돌봄과 복지, 기후 대응, 과학기술과 창업, 골목상권 등 전방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책을 강화하면 어떨까?
많은 보고서가 지난 몇십년과 같은 고성장 시기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 모두 기대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고단한 국민들에게 먼저 희생을 강요하지 말자. 포용은 힘 있고, 가진 자가 시작하는 것이다. 엘리트층의 불편부당성 실현과 자기희생이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곪은 상처를 도려내며, 사회대개혁의 기초를 마련하게 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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