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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대세는 국내여행

    일곱색깔 ‘보훈둘레길’, 아이랑 쉬엄쉬엄 걷기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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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오전 기자의 자녀인 7살 어린이와 임재근 사단법인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이 함께 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을 걷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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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유성구의 보훈둘레길을 처음 걸은 건 아이가 5살 때였다. 대전 주변에 아이도 걸을 수 있을 만한 곳을 알아보다 찾은 곳이었다. 그 이후 우리 가족은 종종 보훈둘레길을 찾는다. 대전현충원을 빙 둘러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어진 둘레길은 부담 없이 아이와 함께 걷기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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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소곤’ 차례를 앞두고 일요일이던 지난달 23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함께 대전현충원의 보훈둘레길을 다시 찾았다. 이번 둘레길 걷기에는 ‘대전현충원 전문가’인 임재근 사단법인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과 함께했다. 임 소장은 대전현충원의 곳곳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다. 대전현충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발굴한 이야기를 엮어 지난해 10월 책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를 공저로 펴내기도 했다. 그는 해마다 보훈둘레길에서 ‘이야기가 있는 대전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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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쨍한 봄날, 보훈둘레길의 시작점인 대전현충원 보훈매점 앞에서 임 소장을 만났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니?” “현충원이요!”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기 전 현충원 안내지도 앞에서 임 소장이 아이에게 대전현충원과 둘레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국립묘지인 대전현충원은 박정희 정권 끝자락인 1979년 4월에 만들기 시작해 전두환 군부 시절인 1985년 11월 준공됐다. 지난해 6월 기준 약 100만평(330만9553㎡) 면적의 대전현충원엔 총 14만6443위의 묘와 위패·유골함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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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전문가’인 임재근(오른쪽) 사단법인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이 아이에게 대전현충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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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훈둘레길은 대전현충원 안에 조성한 산책로다. 대전현충원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야만 둘레길을 걸을 수 있다. 둘레길도 현충원 운영시간인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개방된다.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쪽빛·보라 등 각 1.2∼2㎞의 7개 길로 이어졌다. 총 길이가 10.04㎞라 ‘천사길’이라고도 불린다. 1코스인 빨강길은 현충원을 만들 때 나온 흙을 쌓아 생긴 언덕 부분이라고 한다. 2007년 당시 이용원 대전현충원장은 그 언덕에 나무를 심고 없던 길을 내 ‘산책로(빨강길)’를 만들었다. 바통을 넘겨받은 후임 권율정 원장은 차례로 주황·노랑·초록·파랑·쪽빛·보라길을 조성해 2015년 ‘보훈둘레길’을 완성했다.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무덤이 있는 묘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보훈둘레길 덕분에 이젠 많은 이들이 대전현충원을 친숙한 공간으로 느끼고 있지. 둘레길을 걷다보면 손기정 선수와 대통령 묘도 볼 수 있단다. 이제 우리 걸어볼까?”





    빨강길은 이미 걸어본 적이 있는 아이도 자신 있게 길을 나섰다. 사람이 흙을 쌓아 만든 언덕이라 그런 것인지 빨강길은 나무뿌리가 밖으로 드러나 울퉁불퉁하다.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이지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살짝 긴장하며 걸어야 한다. 임 소장이 중간중간 길 너머 보이는 묘역을 가리키며 설명하면 아이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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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근 소장이 대전현충원 안에 있는 ‘호국철도기념관’ 앞에서 증기기관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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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길 중간쯤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자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놓여있었다. 아이는 “이거 저번에도 봤어요!”라며 아는 척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쓰이던 기관차를 대전현충원에 가져와 ‘호국철도기념관’으로 꾸민 것이다. 기차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전쟁 당시 287명의 철도인이 군사 수송작전에 참여해 순직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철도영령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둘레길을 걷다가 보던 증기기관차의 정체가 호국철도기념관인 줄은 엄마·아빠도, 아이도 처음 알았다.





    호국철도기념관에서 오른쪽의 공무원묘역 앞엔 ‘세월호 순직교사 묘소’라고 쓰인 노란색 표지판이 있었다. “세월호가 뭐예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잠시 머뭇거리던 임 소장은 “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가던 형·누나들이 배가 침몰해 하늘나라에 갔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 묘역을 지그시 바라보던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인공연못인 ‘한얼지’를 지나 만난 주황길은 대나무숲으로 시작됐다. 키 작은 대나무숲 위로 보이는 파란하늘 풍경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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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호국철도기념관’ 옆에 있는 공무원묘역 앞에 ‘세월호 순직교사 묘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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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둘레길 1코스인 빨강길을 벗어나 주황길 쪽으로 가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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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작은 대나무숲과 파란하늘이 어루저진 보훈둘레길의 주황길.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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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황길 중간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니 이번엔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이 보였다. 묘지가 부족해 중간에 독립유공자도 함께 묻혀 있는 묘역이었다. “ㅇㅇ아 일로 와 봐.” 묘역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임 소장이 손짓하며 아이를 불렀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의 묘비를 가리키며 임 소장이 말했다. “ㅇㅇ이는 잘 몰라도, 엄마·아빠는 딱 보면 알 텐데?” “조오련이 누군데요?” 천진한 표정의 아이 옆으로 ‘박치기 왕’ 김일 선수의 묘도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체육인들 중 사회공헌자 묘역에 묻힌 분들도 있단다. 저 위에도 한 분이 더 계시지. 누굴까?” “아 맞다, 손기정!” 역사책에서 본 ‘손기정 할아버지’ 이야기에 아이는 묘역 맨 위까지 깡충깡충 뛰어 올라갔다. ‘체육인 손기정의 묘’라고 적힌 묘비 아래 심훈이 올림픽 쾌거 소식을 듣고 쓴 시 ‘오오, 오전의 남아여!’가 새겨져 있었다. 손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건 직후 중앙일보 호외에 실린 이 시는 심훈의 생전 마지막 시이기도 하다. 동아일보·중앙일보가 손기정의 일장기를 지워 폐간된 이야기도 들으면서 아이는 열심히 손기정 선수의 묘소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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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훈둘레길의 주황길 중간쯤 있는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가장 위쪽에 안장된 손기정 선수의 묘소 모습을 아이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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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대통령 묘역에 안장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소를 바라보며 임 소장이 아이에게 ‘대통령과 그들의 묘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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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주황길을 걷다 대통령 묘역 표지판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최규하 전 대통령 묘소가 있었다. 대전현충원의 대통령 묘역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만들어졌다. 뒤늦게 대통령 묘와 관련된 법 규정이 생기면서 함께 만들어진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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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안장자 위치와 보훈둘레길 안내도.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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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법에 따라 국립묘지에 (파면당하지 않은) 대통령 1명당 80평(264㎡) 이내의 묘를 쓸 수 있는데, 대전현충원의 대통령 묘역은 80평 규모로 8기를 안장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 이후로 이곳에 안장된 사람은 없다. 고인이 된 다른 대통령 중 누구도 대전에 오지 않아, 최 전 대통령 혼자 640평의 묘역 전체를 쓰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대통령은 서울현충원, 노무현 대통령은 김해 봉하마을, 노태우 대통령은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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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대통령 묘역에서 봉안관 쪽까지 ‘국수 먹으러’ 뛰어내려가는 아이.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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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현충원을 찾은 다른 방문객들 틈에 서서 ‘구암사 나눔의집’ 무료 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최예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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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대전현충원 안 은행나무길 모습. 임재근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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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묘역까지 보고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 아이를 “국수 먹으러 가자”고 달래 ‘봉안관’까지 걸어 내려갔다. 잎은 없었지만 시원하게 뚫린 은행나무길이 참 예뻤다. 그 길을 따라 아이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 달렸다. 봉안관 옆 조계종 구암사가 운영하는 ‘나눔의 집’에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현충원 방문객에게 무료 국수를 준다. 채수에 김치를 넣어 만든 슴슴한 국수를 후루룩 다 먹더니 아이는 웃으며 “한 그릇 더!”를 외친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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